nedjelja, 23. veljače 2025.

하나님의 열번째 계명

 

 

하나님의 열번째 계명

"너는 네 이웃의 소유를 탐내지 말라" (출 20:17) 

"너희 중에 누가 양 백 마리가 있어서 한 마리를 잃으면, 아흔 아홉 마리를 광야에 두고, 잃은 한 마리를 찾아갈 때까지 찾지 아니하겠느냐?"  (눅 15:4)
"또 어떤 여자가 열 드라크마를 가지고 있으면서 하나를 잃으면 등불을 엮어 매고 집안을 쓸며 찾을 때까지 꼼꼼히 찾지 아니하겠느냐?"  (눅 15:8)

  첫 번째 비유에서,  질문이 생깁니다. 목자는 양 한 마리를 잃었을 때 무엇을 할까요? 그는 그 손실에 대해 걱정하지 않을까요? 아니요, 그는 걱정하지 않을 것입니다. 하지만 그는 즉시 다른 양들을 두고 서둘러 잃어버린 한 마리를 찾아가 가능한 한 빨리 그녀를 찾아 양 떼에게 돌려보낼 것입니다.
  또 다른 비유는 여자가 귀중한 동전 하나를 잃어버렸을 때 어떻게 할 것인가에 대한 의문을 제기합니다. 그를 걱정하지 않을까요? 아니요, 하지만 그녀는 그를 돌보고 그를 찾기 위해 무엇이든 할 것입니다. 그는 서둘러 불을 켜고, 집을 청소하고, 가능한 한 빨리 그를 찾기 위해 모든 구석을 수색할 것입니다. 
  의문이 생깁니다. 복음서의 이 비유들은 무엇을 말하는 것일까요? 합리적이고 의로운 사람 에게는 그들이 자신의 영혼의 구원을 위해 부지런하고 열렬하게 일해야 할 의무에 대해 이야기하고 있다는 것이 분명합니다 !     
  목자가 양에 대해 염려하고 여자가 동전에 대해 염려하는 것처럼, 즉 그들이 물질적인 지상 소유물에 대해 염려하는 것처럼, 우리는 그보다 더 우리 영혼의 구원에 대해 염려해야 합니다.  주 예수 그리스도의 보배로운 피로 구속받고 성령으로 거룩하게 되어 천국에서 행복과 영원한 축하를 위해 정해진 하나님의 형상인 우리 영혼의 가치는  헤아릴 수 없습니다. 우리가 영혼을 잃으면 모든 것을 잃게 됩니다 즉, 우리의 몸, 천국, 하나님을 잃게 되고 더 이상 구원받을 수 없는 지옥의 심연에 던져지게 됩니다. 그러면 누가 자신의 영혼을 구원하고 천국의 행복으로 이끌기 위해 모든 것을 다하지 않겠습니까?
  그러나 오늘날 많은 사람들이 자신의 영혼을 돌보지 않습니다. 그들은 하나님과 구원을 잊었고, 죄를 쌓고 죽음을 기다리며, 죽음은 그들을 영원한 멸망으로 이끌 것입니다. 그들의  모든 노력은 이 땅에서 평온하고 행복한 날들을 보내기 위해 풍부한 지상의 재물을 위해 노력하는 것입니다. 사도 바울의 말씀에 따르면, 그들의 신은 배이며, 그들은 모든 일에서 배를 기쁘게 하기를 원합니다. "그들의 종말은 멸망이요, 그들의 신은 배요, 그들의 교만은 수치에 있습니다. 그들은 세상적인 것만 생각합니다" (빌립보서 3:19).  
  바로 이런 삶의 참된 가치에 대한 오해로 인해 많은 사람들이 눈앞에서 영원한 운명을 잃고 구원의 일을 완전히 소홀히 합니다.  자신이 추구하고 사랑해야 할 것을 추구하고 사랑하지 않는 사람 , 즉 하나님과 자신의 영혼의 구원을 사랑하지 않는  사람 은 추구하고 사랑해서는 안 될 것을 추구하고 사랑합니다. 즉, 그는 세상과 그 무가치한 재화와 덧없는 기쁨을 추구하고 사랑합니다. 하나님은 이것을 알고 계시며, 그래서 그분은 아홉 번째와 열 번째 계명을 주셨는데, 이는 사람이 지상의 재화에 대한 무질서한 욕망을 금하고 하늘에서 가치 있는 재화를 위해 온 힘을 다해 추구하고 싸우라고 지시합니다.    
  열 번째 계명에 관해 말할 때 우리가 알아야 할 점은 다음과 같습니다.

  하나님께서 열 번째 계명에서 명령하시는 것
  하나님께서 열 번째 계명에서 금하신 것

  하나님께서 열 번째 계명에서 명령하시는 것

  이 계명에서 하나님께서는 다음과 같이 명령하십니다.

우리 이웃이  가진   모든 것을 감사하고 존중하십시오
우리 에게 속한   것에 완전히 만족하다 

우리 이웃이  가진   모든 것을 감사하고 존중하십시오

  우리는 이웃의 재산을 존중하고 감사해야 하며  , 이웃의 향상을 기뻐하고, 그가 얻은 모든 것을 정의로운 방식으로 소유하고 지원하기를 마음 깊이 바라야 합니다. 이것은  주님께서 말씀하신 사랑의 법칙에 의해 분명히 명령되어 있습니다 .  "너희가 남에게 해 주기를 바라는 것은 무엇이든지 남에게 해 주어라!" (마태복음 7:12).  
 이웃 이  마음 깊은 곳에서 우리가 소유한 것을 원하고  우리가 행복 하고 만족해하는 것을 볼 때 진심으로 기뻐하는 것이 우리    의 끊임없는 소망입니다 . 따라서 우리는 이웃에 대해서도 같은 생각과 소망을 가져야 합니다 . 이것이 우리가 사랑의 법칙을 성취하는 유일한 방법이기 때문입니다.       
우리는 마음 깊은 곳    에서 이웃에게 행복을 바라야 합니다. 우리에게 가장 중요한 계명은 이웃을 우리 자신처럼 사랑하라는 것이고 주님께서도 "네 이웃을 네 자신처럼 사랑하라!" (마태복음 22:39)고 확증하셨습니다.     
  그러므로 우리가 이웃을 우리 자신처럼 사랑한다면, 우리 는  그를 좋게 생각하고 그가 가진 좋은 것을 마음 깊이 기원합니다. 그래서 사도 바울은 사랑은 시기하지 않는다고 말합니다.
  또한 인간 사회, 즉 공동체의 개선은 우리가 이웃이 소유한 재물을 마음 깊이 바라는 것을 요구합니다. 따라서 우리를 부러워하는 사람들이 있고 우리의 행복이 그들의 옆구리에 가시가 된다는 것을 안다면 우리가 평화롭고 만족스럽게 소유물을 소유하고 진심으로 우리  의 안녕  을 기대할 수는 없습니다. 
  만약  우리가  이웃의 물건을 부러워하도록 허락된다면, 더 이상 인격, 재산, 명예, 명예에 대한 안전은 없을 것입니다. 부러움은 마음속에 닫혀 있지 않고, 가장 좋은 기회가 올 때 독사처럼 침입하여 큰 악과 파괴를 일으키기 때문입니다. 인류 역사는 이에 대한 증거를 많이 보여줍니다. 인류의 시작부터 사탄은 아담과 이브가 순진한 상태에서 누리고 있던 행복을 부러워했고, 그 때문에 그들을 공격하여 인류 전체를 파괴하고 가장 큰 재앙으로 몰아넣었기 때문입니다.
  더욱이 카인은 하느님께서 자기보다 더 사랑하시는 동생 아벨을 시기하여 손을 들어 그를 살해했습니다.
  야곱의 아들들이 동생 요셉을 노예로 팔았던 것, 사울이 무고한 다윗을 처형하고자 했던 것, 이스라엘 사람들이 주 예수 그리스도를 십자가에 못 박았던 것 모두 질투심에서 비롯된 일이었습니다.
  이러한 예들은 시기심이 얼마나 심각한 죄인지를 분명히 보여줍니다. 중상모략, 해악, 강도, 살인, 간단히 말해 모든 사악함은 시기심에서 나옵니다.  따라서  우리는 조심해야 하며 이 추악한 죄가 자리 잡도록 결코 허용해서는 안 됩니다  .
 마지막으로, 하나님의 열 번째 계명은 우리가 이웃이 소유한 모든 좋은 것에 대해 진심으로 기뻐하고 마음 깊이에서 그의 모든 노력에 최선을 기원하라는 것을 엄격히 명령한다는 것을    다시 한 번 강조할 필요가 있습니다 . 

우리 에게 속한   것에 완전히 만족하다 

  우리가 소유한 것에 만족하기 위해 사도 바울은 우리에게 분명히 경고합니다:  "돈을 탐하지 말고 너희의 통치를 만족히 여기라!" (히브리서 13:5). 
  하나님께서 우리에게 모든 좋은 것을 주셨다는 생각만으로도  우리는 우리가 가진 것에 온전히 만족  해야 합니다 .   
  사실, 그것은 단순한 우연이 아니라 신의 뜻입니다. 즉, 어떤 사람은 부자가 되고 어떤 사람은 가난해지는 것이 허락된 것이며, 한 사람은 많이 소유하고 다른 사람은 적게 소유하는 것도 허락된 것입니다.
  주 하나님께서 이치에 맞지 않게 자신의 지상 재산을 나누어 한 사람에게는 더 많이 주고 다른 사람에게는 덜 주신 것은 아닙니다. 하나님께서 자신의 무한한 지혜로 어떤 사람이 부자가 되는 것이 좋다고 판단하시면 그 사람에게 그 재산을 주시고, 어떤 사람이 가난한 것이 더 좋다고 판단하시면 그 사람이 가난하게 살도록 허락하십니다. 그러나 하나님께서는 또한 가난한 사람들에게 필요한 만큼을 주셔서 그들이 검소하고 근면하며 정직해야만 정상적으로 살 수 있게 하십니다. 그러면 하나님의 그런 결정에서 무슨 결과가 나올까요? 다른 것은 없고, 우리가 가진 것에 만족해야 할 의무가 있을 뿐입니다. 자신의 삶의 상황에 만족하지 못한다는 것은 하나님 자신에게 만족하지 못한다는 것을 의미하는데, 이는 분명히 불의하고 완전히 죄악입니다.
  그러므로 가난 때문에 그러한 생각이 우리에게 생겨나  그러한 상태 때문에 우리 마음에 불만을 품게 된다면, 우리는 즉시 그 생각을 억누르고, 우리를 가난과 겸손의 상태에 두신 하느님께서 우리에게 좋고 유익한 것만을 원하시고, 그렇기 때문에 우리는 그분의 거룩한 뜻을 기쁘게 받아들여야 한다는 것을 생각  하고 이해해야 합니다 .    
  우리가 가진 것에 만족해야 하는 또 다른 이유는 우리가 있는 상태에 대한 불만이 많은 죄와 불의로 이어지기 때문입니다.  자신의 상태에 만족하지 못하는 사람은 더 나은 상태에 있는 이웃을 부러워합니다. 그래서 그는 다른 사람의 이익을 위해 손을 내밀고, 속이고, 훔치고, 다른 불의를 저지르려는 유혹에 빠집니다. 그의 불만은 그가 자신의 상태를 개선하도록 강요합니다. 즉, 어떤 대가를 치르더라도 돈과 보물을 획득하도록 강요합니다. 그에게는 부자가 되는 것보다 더 큰 목적과 목표는 없습니다. 그러한 사람은 부를 지나치게 추구하기 때문에 사탄의 함정에 빠지고 자신의 영혼을 잃을 큰 위험에 처해 있으며, 사도 바울이 이를 확증합니다. "부자가 되고자 하는 자들은 유혹과 올무와 여러 가지 미친 것과 파괴적인 정욕에 빠지니 이는 사람을 파멸과 멸망으로 인도함이니 돈에 대한 탐심이 모든 악의 근원이니라" (딤전 6:9-10).  
  우리가 처한 상황으로 인한 불만족은 종종  우리 에게 악한 영향을 미치고  , 게으름에 봉사하면서 우리의 의무를 완전히 소홀히 하고, 따라서 우리 자신과 다른 사람들에게 짐이 되는 지경에 이르게 합니다   이러한 
  불만족의 방식에서 비롯되는 이러한 큰 악을 살펴보면, 우리는 이 세상의 재물에 대한 모든 무질서한 욕망을 억제하고 하나님께서 우리에게 주신 것에 만족해야 합니다  . 사도 바울이 확증한 바와 같습니다. "참으로 믿음은 영이 자기가 가진 것으로 만족하면 큰 이익이 됩니다. 곧 우리가 이 세상에 아무것도 가지고 오지 아니하였은즉, 아무 것도 가지고 갈 수 없나니 먹을 것과 입을 것이 있거든 그것으로 만족하자!" (딤전 6:6-8).   
  부와 풍요가 아니라 마음의 만족만이 우리의 삶을  행복하게 만들 수 있다는 진실은  우리를  하느님께서 우리에게 주신 것에 더욱 만족하게 만들어야 합니다   "큰 부가 당신에게 기쁨을 줄 수 있다고 생각하지 마십시오." 성 요한 크리소스톰이 말했습니다. "당신은 부자가 되고 싶지 않을 때에만 행복할 수 있습니다. 우리가 목마르면 고통은 계속되고, 모든 학생을 지치게 하고 수천 개의 강물을 마셔도 고통은 더 클 것입니다."
  이 거룩한 교회의 거룩한 스승이 얼마나 진실되게 말씀하시는지요. 이 세상의 모든 것은 너무나 약하고 쓸모없고 사소하며, 짧은 시간이라도 적어도 겉보기에 행복을 줄 수 없기 때문입니다. 그렇기 때문에 우리는  우리를 만족시킬 수 없는 너무나 허무하고 덧없는 세상적 재물에 대한 무질서한 욕망을 가져서는 안 되며,  하느님께서 우리에게 주신 것으로 만족해야 합니다  . 
  우리의 주된 관심사는 깨끗한 양심을 갖는 것이어야 합니다. 왜냐하면 그것은  우리에게  이 모든 보물을 가진 자랑스러운 세상이 결코 줄 수 없는 진정한 만족, 평화, 평온을 가져다주기 때문입니다   "깨끗한 양심을 가진 사람은" - 성 요한 크리소스톰이 말했듯이 - "그는 자루옷을 두르고 배고픔을 겪더라도 모든 즐거움 속에서 헤엄치는 사람보다 더 행복합니다." 사악한 양심을 가진 사람은 모든 사람 중에서 가장 불운한 사람입니다. 그가 모든 재물이 풍부하게 살더라도 말입니다.
  이런 이유로 사도 바울은 끊임없이 목마르고 헐벗고 많은 매를 맞았지만 어떤 왕보다도 기뻐하며 더 큰 삶의 즐거움 속에서 살았습니다. 이것이 우리가 깨끗한 양심을 돌보아야 하는 이유인데, 그것은 삶과 죽음의 시간에 가장 큰 보물이기 때문입니다.
이 세상의 재물에 대한 무질서한 욕망으로부터 우리의 마음을    구하기 위해 , 우리는 우리의 고향이 이 땅이 아니라 하늘에 있다는 사실을 생각해야 합니다. 
  이제 우리가 돈과 보물이 풍부하고  우리가  세상의 모든 왕국의 주인이라고 가정해 봅시다. 그러면 우리는 스스로에게 다음과 같은 질문을 해야 합니다. 우리의 소위  행복은 얼마나 오래 지속될까요? 20년, 30년, 50년 또는 그 이상 지속되고 모든 것이 지나가고 사라질 것입니다. 왜냐하면 이 세상에서 우리의 삶은 짧고 모든  날은 셀 수 없기 때문입니다. 죽음은 빠른 걸음으로 다가오고  우리에게는 죽은 옷, 관, 그리고  우리를 덮을 몇 제곱미터의 흙 외에는 아무것도 남지 않습니다 .  우리의 마음이 헛되고 덧없는 재물에 사로잡혀 있다면 우리는 얼마나 많은 어리석은 짓을 저지르게 될까요 ? 이러한 이유로 우리는 우리의 시선을 영원으로 돌려야 합니다.왜냐하면 거기에 우리의 목적과 목표가 있기 때문입니다 그리고 우리는 사도 바울의 말씀을 자주 생각해야 합니다. "눈으로 보지 못하고 귀로 듣지 못하고 사람의 마음에 떠오르지 아니한 것도 하나님이 자기를 사랑하는 자들을 위하여 예비하신 것이니라" (고전 2:9).      
  하나님을 사랑하는 자들에게 기다리는 엄청난 행복을 생각하면 우리는 땅이 가지고 있고 제공하는 모든 것을 멸시하게 될 것이고, 성 이그나티오처럼 "오, 하늘을 보면 땅이 얼마나 역겹게 보이는지!"라고 말할 것입니다.
  사도 바울의 말씀에 따르면, "하나님께서 미리 아신 자들을 또한 그 아들의 형상을 본받게 하려고 미리 정하셨으니, 이는 그가 많은 형제 중에서 맏아들이 되게 하려 하심이니라" (로마서 8:29)고 하신 말씀에 따라, 우리는 우리의 주님이시며 구세주이신 예수 그리스도와 동등해져야 할 의무가 있으며, 선하고 깨끗한 양심으로 이 의무를 다해야 합니다.  
  따라서  우리가  부당하게 무엇인가를 취득 했다면 , 즉  강도, 절도, 사기, 고리대금 등으로 이웃의 재산을 손상시켰다면, 우리 는 모든 것을  돌려주고 피해를 보상할 의무가 있습니다. 왜냐하면 천국에서의 영원한 행복이 이 의무를 다하는 것에 달려 있기 때문입니다 .     

  하나님께서 열 번째 계명에서 금하신 것

이 계명에서 하나님께서는 우리 가 이웃    의 이익을 위해 부당한 욕망을 갖는 것을 금하십니다 !
  여기서 강조되는 것은 우리가 이웃의 소유물을 부당하게 욕망해서는 안 된다는 것입니다. 다른 사람의 소유물에 대한 욕망이 모두 죄이고 부당하며 열 번째 계명에 따라 금지된 것은 아니기 때문입니다. 우리가 이웃의 소유물을 정의롭고 허용되는 방법으로만 얻고자 할 때 우리는 결코 죄를 짓는 것이 아닙니다.
이것은 우리가 우리 밭    과 인접한 이웃의 밭을 사고 싶을 때 , 그리고 우리가 힘이나 교활함으로 그 밭을 우리 스스로 차지하려고 하지 않고,  이웃이 자발적으로 우리에게 팔거나 교환으로 주는 조건으로만 그 밭을 차지하려고 할 때의 예에서 볼 수 있습니다 .  그런 경우, 우리는 우리 이웃의 이익을 위해 부당하게 노력하지 않습니다. 즉, 우리는 불의한 방법으로 다른 사람의 이익을 얻고 싶어하지 않으며, 그렇기 때문에 우리는 죄를 짓지 않습니다. 
  그래서, 하나님의 열 번째 계명에 따르면,  우리는 다른 사람의 선을 불의한 방법으로 원하고 이웃을 희생하여 그것을 우리 자신에게 기꺼이 차지할 때 죄를 짓습니다. 
  이것의 눈에 띄는 예는 우리 이웃의 집에 돈이 많이 있다는 것을 알고 , 그 돈을 탐욕스럽게 탐 하여 그것을 훔쳐서 우리 자신에게 차지하기로 결정할 때입니다. 이 경우, 우리의 탐욕은 심각하게 죄가 됩니다. 왜냐하면 우리는 불의한 수단, 즉 고의적인 도둑질로 다른 사람의 선을 획득하고자 하기 때문입니다.     
  복음서의 예에 따르면, 나봇의 포도원을 원하는 아합의 탐욕이 바로 그런 것입니다. 아합은 공정하든 불공정하든 어떤 수단을 써서든 나봇의 포도원을 차지하려고 했습니다. 공정한 매수로 그것을 얻을 수 없었기 때문에, 그는 탐욕으로 살인적인 강도질을 저질러 그것을 차지하려고 했습니다. 그래서 성 요한 크리소스톰은 "탐욕은 세상에 모든 악을 가져오는 열정입니다."라고 말합니다.
  이제 간단하고 자세히 살펴보겠습니다. 불의한 선을 원하는 것이 어떤 죄 인지 생각해 보겠습니다. 
  불의한 선을 바라는 마음에서 죄를 짓는 사람들 중에는 무엇보다도  무역 에 종사하는 사람들이 있는데, 이들은 기근이나 높은 가격이 발생하기  를 바라 면서 가능한 한 비싼 가격으로 상품을 팔고자 합니다.  
그 와 주변에서 다른 사람이 사고파는 것을 원치 않는 상인들은   불공정한 이점을 얻고자 하는 욕망으로 실수를 범합니다 . 왜냐하면 그렇게 되면 만들어진 경쟁으로 인해 피해를 입기 때문입니다.        
  일반적으로, 다른 사람의 재산으로 부당하게 부유해지려는 모든 상인은 하나님의 열 번째 계명을 어기는 죄를 짓습니다.
  도덕적으로 상인은 적당한 이익을 추구하는 것은 허용되지만, 이웃의 곤경을 부당하게 횡령하는 데 사용하는 것은 허용되지 않습니다. 이웃의 곤경을 이용하는 것은 매우 죄스럽고 비난받을 만한 일입니다. 왜냐하면 그것은 사랑과 정의에 어긋나기 때문입니다.
 또한 상속권을 가진 자가  부모의 재산을 가능한 한 빨리 받기 위해 부모가 일찍 죽기를 바랄 때,    불의한 선을 바라는 죄를 짓는 것이다. 즉, 하느님께 부모를 가능한 한 빨리 이 세상에서 데려가 달라고 기도 하는  자는 부모의 재산을 가능한 한 빨리 처분할 수 있도록 죄를 짓는 것이다.
 부모를 죽여서 더 이상 부양하고 부양할 필요가 없게 되기를 바라는 자도    같은 죄를 지었습니다 . 그런 사람은 너무나 불경건해서 늙은 아버지나 어머니에게 오래 살았으니 죽을 때가 왔다고 얼굴을 마주보며 말할 수 있습니다.  그런 짓을 하는 사람은 하느님께서 자기 부모를 심판한 것과 같은 방식으로 자기를 심판하실까 두려워해야 하며, 부모에 대한 의무를 심각하게 어겼기 때문에 저승에서 끔찍한 형벌을 받을까 두려워해야 합니다. 그러므로 성경의 말씀이 그들의 마음에 새겨져야 합니다. "아버지를 학대하고 어머니를 쫓아내는 아들은 부끄럽고 타락한 자니라" (잠언 19:26).
    
  마찬가지로, 친척과 다른 친척들의 유산을 상속받기 위해 그들의 조기 사망을 기대하는  사람  도 죄를 짓습니다. 그러한 사람은 이웃에 대한 거룩한 가톨릭적 사랑으로 인해 매우 중대한 죄를 짓습니다. 왜냐하면 그는 생사의 유일한 주인이신 하느님의 정의에 접촉하기 때문입니다.
 마찬가지로, 평화를 좋아하지 않고 희생에 관계 없이 가능한 한 많은 명예를 얻거나 정복하기 위해 전쟁을 원하는 군인   도 불의한 선을 바라는 욕망으로 죄를 짓습니다  .
  그리고 의사인  그는  특정 질병이 나타나거나 부유한 환자가 오랫동안 회복되지 않을 때 기뻐하며 그들에게 가능한 한 오랫동안 의료비를 지불함으로써 이익을 얻으려고 하는 것도 실수를 범합니다.
 변호사인 사람이  관대한 소송과 장기 소송에만 신경을 쓴다면   실수를 범하는 것입니다 .
 장인인 사람   도 다른 사람에게 불행이 닥치기를 바라면 실수를 합니다  . 예를 들어, 더 많은 일을 해서 점점 더 많은 이익을 얻기 위해 불을 피우는 것입니다.
  이웃의 명예와 좋은 평판을 시기하여 그것이 가능한 한 빨리 없어지기를 바라는 사람과, 그것이 가능한 한 빨리 회복되기를 바라는 사람은   똑같이 중대한 죄를 짓는 것입니다.
  다른  사람의 명예를 탐하는 이런 욕심은 종종 가장 큰 불의로 이어진다. 왜냐하면 그는 이웃을 험담하고 중상모략하며, 자신의 이익을 위해 모든 방법으로 이웃을 모욕하고자 하기 때문이다.
 위에서 언급한 모든 예는 우리가 이웃의 행복을 기원 하고, 행복한 사람과 함께 기뻐하며, 슬퍼하는 사람과 함께 슬퍼하라는   거룩한 가톨릭 사랑에 어긋나는 죄를 짓는다는 것을 보여줍니다 . 
  일반적으로, 하나님의 열 번째 계명에 따르면, 우리는 이 세상의 일시적인 재물에 대한 무질서하거나 부당한 욕망을 가질 때 죄를 짓는다고 할 수 있습니다. 이러한 부당한 욕망에서 다른 사람의 재물에 대한 용납할 수 없는 탐욕뿐만 아니라 시기, 악의, 소송, 도둑질, 강도, 살인 및 기타 다른 악이 생겨납니다. 그래서 사도 바울은 탐욕이 모든 악의 근원이라고 올바르게 말합니다. "부자가 되고자 하는 자들은 유혹과 함정과 여러 가지 미친 것과 파괴적인 정욕에 빠져 사람을 파멸과 멸망으로 이끕니다. 돈을 탐하는 것이 모든 악의 근원이기 때문입니다" (딤전 6:9-10).  
  그러므로 당신은  탐욕이 마음에 들어오지 않도록 주의 깊게 마음을 살펴야 합니다. 이 세상의 어떤 좋은 것에 대한 무질서한 탐욕이 마음에 들어온다면, 우리는 즉시 그것을 제거하고 우리 자신에게서 그것을 거부해야 합니다. N은 결코 자신의 부를  늘리  거나 이웃에게 해를 끼치는 방식으로 자신을 부유하게 만들고 정의를 어기고 싶어해서는 안 됩니다. 한마디로, 우리는 십계명이 우리에게 금지하는 모든 것을 삼가야 하며  그것이 명령하는 모든 것을 부지런히 행해야 합니다. 아멘!   

"너는 네 이웃의 소유를 탐내지 말라" (출 20:17) 

"너희 중에 누가 양 백 마리가 있어서 한 마리를 잃으면, 아흔 아홉 마리를 광야에 두고, 잃은 한 마리를 찾아갈 때까지 찾지 아니하겠느냐?"  (눅 15:4)
"또 어떤 여자가 열 드라크마를 가지고 있으면서 하나를 잃으면 등불을 엮어 매고 집안을 쓸며 찾을 때까지 꼼꼼히 찾지 아니하겠느냐?"  (눅 15:8)

  첫 번째 비유에서,  질문이 생깁니다. 목자는 양 한 마리를 잃었을 때 무엇을 할까요? 그는 그 손실에 대해 걱정하지 않을까요? 아니요, 그는 걱정하지 않을 것입니다. 하지만 그는 즉시 다른 양들을 두고 서둘러 잃어버린 한 마리를 찾아가 가능한 한 빨리 그녀를 찾아 양 떼에게 돌려보낼 것입니다.
  또 다른 비유는 여자가 귀중한 동전 하나를 잃어버렸을 때 어떻게 할 것인가에 대한 의문을 제기합니다. 그를 걱정하지 않을까요? 아니요, 하지만 그녀는 그를 돌보고 그를 찾기 위해 무엇이든 할 것입니다. 그는 서둘러 불을 켜고, 집을 청소하고, 가능한 한 빨리 그를 찾기 위해 모든 구석을 수색할 것입니다. 
  의문이 생깁니다. 복음서의 이 비유들은 무엇을 말하는 것일까요? 합리적이고 의로운 사람 에게는 그들이 자신의 영혼의 구원을 위해 부지런하고 열렬하게 일해야 할 의무에 대해 이야기하고 있다는 것이 분명합니다 !     
  목자가 양에 대해 염려하고 여자가 동전에 대해 염려하는 것처럼, 즉 그들이 물질적인 지상 소유물에 대해 염려하는 것처럼, 우리는 그보다 더 우리 영혼의 구원에 대해 염려해야 합니다.  주 예수 그리스도의 보배로운 피로 구속받고 성령으로 거룩하게 되어 천국에서 행복과 영원한 축하를 위해 정해진 하나님의 형상인 우리 영혼의 가치는  헤아릴 수 없습니다. 우리가 영혼을 잃으면 모든 것을 잃게 됩니다 즉, 우리의 몸, 천국, 하나님을 잃게 되고 더 이상 구원받을 수 없는 지옥의 심연에 던져지게 됩니다. 그러면 누가 자신의 영혼을 구원하고 천국의 행복으로 이끌기 위해 모든 것을 다하지 않겠습니까?
  그러나 오늘날 많은 사람들이 자신의 영혼을 돌보지 않습니다. 그들은 하나님과 구원을 잊었고, 죄를 쌓고 죽음을 기다리며, 죽음은 그들을 영원한 멸망으로 이끌 것입니다. 그들의  모든 노력은 이 땅에서 평온하고 행복한 날들을 보내기 위해 풍부한 지상의 재물을 위해 노력하는 것입니다. 사도 바울의 말씀에 따르면, 그들의 신은 배이며, 그들은 모든 일에서 배를 기쁘게 하기를 원합니다. "그들의 종말은 멸망이요, 그들의 신은 배요, 그들의 교만은 수치에 있습니다. 그들은 세상적인 것만 생각합니다" (빌립보서 3:19).  
  바로 이런 삶의 참된 가치에 대한 오해로 인해 많은 사람들이 눈앞에서 영원한 운명을 잃고 구원의 일을 완전히 소홀히 합니다.  자신이 추구하고 사랑해야 할 것을 추구하고 사랑하지 않는 사람 , 즉 하나님과 자신의 영혼의 구원을 사랑하지 않는  사람 은 추구하고 사랑해서는 안 될 것을 추구하고 사랑합니다. 즉, 그는 세상과 그 무가치한 재화와 덧없는 기쁨을 추구하고 사랑합니다. 하나님은 이것을 알고 계시며, 그래서 그분은 아홉 번째와 열 번째 계명을 주셨는데, 이는 사람이 지상의 재화에 대한 무질서한 욕망을 금하고 하늘에서 가치 있는 재화를 위해 온 힘을 다해 추구하고 싸우라고 지시합니다.    
  열 번째 계명에 관해 말할 때 우리가 알아야 할 점은 다음과 같습니다.

  하나님께서 열 번째 계명에서 명령하시는 것
  하나님께서 열 번째 계명에서 금하신 것

  하나님께서 열 번째 계명에서 명령하시는 것

  이 계명에서 하나님께서는 다음과 같이 명령하십니다.

우리 이웃이  가진   모든 것을 감사하고 존중하십시오
우리 에게 속한   것에 완전히 만족하다 

우리 이웃이  가진   모든 것을 감사하고 존중하십시오

  우리는 이웃의 재산을 존중하고 감사해야 하며  , 이웃의 향상을 기뻐하고, 그가 얻은 모든 것을 정의로운 방식으로 소유하고 지원하기를 마음 깊이 바라야 합니다. 이것은  주님께서 말씀하신 사랑의 법칙에 의해 분명히 명령되어 있습니다 .  "너희가 남에게 해 주기를 바라는 것은 무엇이든지 남에게 해 주어라!" (마태복음 7:12).  
 이웃 이  마음 깊은 곳에서 우리가 소유한 것을 원하고  우리가 행복 하고 만족해하는 것을 볼 때 진심으로 기뻐하는 것이 우리    의 끊임없는 소망입니다 . 따라서 우리는 이웃에 대해서도 같은 생각과 소망을 가져야 합니다 . 이것이 우리가 사랑의 법칙을 성취하는 유일한 방법이기 때문입니다.       
우리는 마음 깊은 곳    에서 이웃에게 행복을 바라야 합니다. 우리에게 가장 중요한 계명은 이웃을 우리 자신처럼 사랑하라는 것이고 주님께서도 "네 이웃을 네 자신처럼 사랑하라!" (마태복음 22:39)고 확증하셨습니다.     
  그러므로 우리가 이웃을 우리 자신처럼 사랑한다면, 우리 는  그를 좋게 생각하고 그가 가진 좋은 것을 마음 깊이 기원합니다. 그래서 사도 바울은 사랑은 시기하지 않는다고 말합니다.
  또한 인간 사회, 즉 공동체의 개선은 우리가 이웃이 소유한 재물을 마음 깊이 바라는 것을 요구합니다. 따라서 우리를 부러워하는 사람들이 있고 우리의 행복이 그들의 옆구리에 가시가 된다는 것을 안다면 우리가 평화롭고 만족스럽게 소유물을 소유하고 진심으로 우리  의 안녕  을 기대할 수는 없습니다. 
  만약  우리가  이웃의 물건을 부러워하도록 허락된다면, 더 이상 인격, 재산, 명예, 명예에 대한 안전은 없을 것입니다. 부러움은 마음속에 닫혀 있지 않고, 가장 좋은 기회가 올 때 독사처럼 침입하여 큰 악과 파괴를 일으키기 때문입니다. 인류 역사는 이에 대한 증거를 많이 보여줍니다. 인류의 시작부터 사탄은 아담과 이브가 순진한 상태에서 누리고 있던 행복을 부러워했고, 그 때문에 그들을 공격하여 인류 전체를 파괴하고 가장 큰 재앙으로 몰아넣었기 때문입니다.
  더욱이 카인은 하느님께서 자기보다 더 사랑하시는 동생 아벨을 시기하여 손을 들어 그를 살해했습니다.
  야곱의 아들들이 동생 요셉을 노예로 팔았던 것, 사울이 무고한 다윗을 처형하고자 했던 것, 이스라엘 사람들이 주 예수 그리스도를 십자가에 못 박았던 것 모두 질투심에서 비롯된 일이었습니다.
  이러한 예들은 시기심이 얼마나 심각한 죄인지를 분명히 보여줍니다. 중상모략, 해악, 강도, 살인, 간단히 말해 모든 사악함은 시기심에서 나옵니다.  따라서  우리는 조심해야 하며 이 추악한 죄가 자리 잡도록 결코 허용해서는 안 됩니다  .
 마지막으로, 하나님의 열 번째 계명은 우리가 이웃이 소유한 모든 좋은 것에 대해 진심으로 기뻐하고 마음 깊이에서 그의 모든 노력에 최선을 기원하라는 것을 엄격히 명령한다는 것을    다시 한 번 강조할 필요가 있습니다 . 

우리 에게 속한   것에 완전히 만족하다 

  우리가 소유한 것에 만족하기 위해 사도 바울은 우리에게 분명히 경고합니다:  "돈을 탐하지 말고 너희의 통치를 만족히 여기라!" (히브리서 13:5). 
  하나님께서 우리에게 모든 좋은 것을 주셨다는 생각만으로도  우리는 우리가 가진 것에 온전히 만족  해야 합니다 .   
  사실, 그것은 단순한 우연이 아니라 신의 뜻입니다. 즉, 어떤 사람은 부자가 되고 어떤 사람은 가난해지는 것이 허락된 것이며, 한 사람은 많이 소유하고 다른 사람은 적게 소유하는 것도 허락된 것입니다.
  주 하나님께서 이치에 맞지 않게 자신의 지상 재산을 나누어 한 사람에게는 더 많이 주고 다른 사람에게는 덜 주신 것은 아닙니다. 하나님께서 자신의 무한한 지혜로 어떤 사람이 부자가 되는 것이 좋다고 판단하시면 그 사람에게 그 재산을 주시고, 어떤 사람이 가난한 것이 더 좋다고 판단하시면 그 사람이 가난하게 살도록 허락하십니다. 그러나 하나님께서는 또한 가난한 사람들에게 필요한 만큼을 주셔서 그들이 검소하고 근면하며 정직해야만 정상적으로 살 수 있게 하십니다. 그러면 하나님의 그런 결정에서 무슨 결과가 나올까요? 다른 것은 없고, 우리가 가진 것에 만족해야 할 의무가 있을 뿐입니다. 자신의 삶의 상황에 만족하지 못한다는 것은 하나님 자신에게 만족하지 못한다는 것을 의미하는데, 이는 분명히 불의하고 완전히 죄악입니다.
  그러므로 가난 때문에 그러한 생각이 우리에게 생겨나  그러한 상태 때문에 우리 마음에 불만을 품게 된다면, 우리는 즉시 그 생각을 억누르고, 우리를 가난과 겸손의 상태에 두신 하느님께서 우리에게 좋고 유익한 것만을 원하시고, 그렇기 때문에 우리는 그분의 거룩한 뜻을 기쁘게 받아들여야 한다는 것을 생각  하고 이해해야 합니다 .    
  우리가 가진 것에 만족해야 하는 또 다른 이유는 우리가 있는 상태에 대한 불만이 많은 죄와 불의로 이어지기 때문입니다.  자신의 상태에 만족하지 못하는 사람은 더 나은 상태에 있는 이웃을 부러워합니다. 그래서 그는 다른 사람의 이익을 위해 손을 내밀고, 속이고, 훔치고, 다른 불의를 저지르려는 유혹에 빠집니다. 그의 불만은 그가 자신의 상태를 개선하도록 강요합니다. 즉, 어떤 대가를 치르더라도 돈과 보물을 획득하도록 강요합니다. 그에게는 부자가 되는 것보다 더 큰 목적과 목표는 없습니다. 그러한 사람은 부를 지나치게 추구하기 때문에 사탄의 함정에 빠지고 자신의 영혼을 잃을 큰 위험에 처해 있으며, 사도 바울이 이를 확증합니다. "부자가 되고자 하는 자들은 유혹과 올무와 여러 가지 미친 것과 파괴적인 정욕에 빠지니 이는 사람을 파멸과 멸망으로 인도함이니 돈에 대한 탐심이 모든 악의 근원이니라" (딤전 6:9-10).  
  우리가 처한 상황으로 인한 불만족은 종종  우리 에게 악한 영향을 미치고  , 게으름에 봉사하면서 우리의 의무를 완전히 소홀히 하고, 따라서 우리 자신과 다른 사람들에게 짐이 되는 지경에 이르게 합니다   이러한 
  불만족의 방식에서 비롯되는 이러한 큰 악을 살펴보면, 우리는 이 세상의 재물에 대한 모든 무질서한 욕망을 억제하고 하나님께서 우리에게 주신 것에 만족해야 합니다  . 사도 바울이 확증한 바와 같습니다. "참으로 믿음은 영이 자기가 가진 것으로 만족하면 큰 이익이 됩니다. 곧 우리가 이 세상에 아무것도 가지고 오지 아니하였은즉, 아무 것도 가지고 갈 수 없나니 먹을 것과 입을 것이 있거든 그것으로 만족하자!" (딤전 6:6-8).   
  부와 풍요가 아니라 마음의 만족만이 우리의 삶을  행복하게 만들 수 있다는 진실은  우리를  하느님께서 우리에게 주신 것에 더욱 만족하게 만들어야 합니다   "큰 부가 당신에게 기쁨을 줄 수 있다고 생각하지 마십시오." 성 요한 크리소스톰이 말했습니다. "당신은 부자가 되고 싶지 않을 때에만 행복할 수 있습니다. 우리가 목마르면 고통은 계속되고, 모든 학생을 지치게 하고 수천 개의 강물을 마셔도 고통은 더 클 것입니다."
  이 거룩한 교회의 거룩한 스승이 얼마나 진실되게 말씀하시는지요. 이 세상의 모든 것은 너무나 약하고 쓸모없고 사소하며, 짧은 시간이라도 적어도 겉보기에 행복을 줄 수 없기 때문입니다. 그렇기 때문에 우리는  우리를 만족시킬 수 없는 너무나 허무하고 덧없는 세상적 재물에 대한 무질서한 욕망을 가져서는 안 되며,  하느님께서 우리에게 주신 것으로 만족해야 합니다  . 
  우리의 주된 관심사는 깨끗한 양심을 갖는 것이어야 합니다. 왜냐하면 그것은  우리에게  이 모든 보물을 가진 자랑스러운 세상이 결코 줄 수 없는 진정한 만족, 평화, 평온을 가져다주기 때문입니다   "깨끗한 양심을 가진 사람은" - 성 요한 크리소스톰이 말했듯이 - "그는 자루옷을 두르고 배고픔을 겪더라도 모든 즐거움 속에서 헤엄치는 사람보다 더 행복합니다." 사악한 양심을 가진 사람은 모든 사람 중에서 가장 불운한 사람입니다. 그가 모든 재물이 풍부하게 살더라도 말입니다.
  이런 이유로 사도 바울은 끊임없이 목마르고 헐벗고 많은 매를 맞았지만 어떤 왕보다도 기뻐하며 더 큰 삶의 즐거움 속에서 살았습니다. 이것이 우리가 깨끗한 양심을 돌보아야 하는 이유인데, 그것은 삶과 죽음의 시간에 가장 큰 보물이기 때문입니다.
이 세상의 재물에 대한 무질서한 욕망으로부터 우리의 마음을    구하기 위해 , 우리는 우리의 고향이 이 땅이 아니라 하늘에 있다는 사실을 생각해야 합니다. 
  이제 우리가 돈과 보물이 풍부하고  우리가  세상의 모든 왕국의 주인이라고 가정해 봅시다. 그러면 우리는 스스로에게 다음과 같은 질문을 해야 합니다. 우리의 소위  행복은 얼마나 오래 지속될까요? 20년, 30년, 50년 또는 그 이상 지속되고 모든 것이 지나가고 사라질 것입니다. 왜냐하면 이 세상에서 우리의 삶은 짧고 모든  날은 셀 수 없기 때문입니다. 죽음은 빠른 걸음으로 다가오고  우리에게는 죽은 옷, 관, 그리고  우리를 덮을 몇 제곱미터의 흙 외에는 아무것도 남지 않습니다 .  우리의 마음이 헛되고 덧없는 재물에 사로잡혀 있다면 우리는 얼마나 많은 어리석은 짓을 저지르게 될까요 ? 이러한 이유로 우리는 우리의 시선을 영원으로 돌려야 합니다.왜냐하면 거기에 우리의 목적과 목표가 있기 때문입니다 그리고 우리는 사도 바울의 말씀을 자주 생각해야 합니다. "눈으로 보지 못하고 귀로 듣지 못하고 사람의 마음에 떠오르지 아니한 것도 하나님이 자기를 사랑하는 자들을 위하여 예비하신 것이니라" (고전 2:9).      
  하나님을 사랑하는 자들에게 기다리는 엄청난 행복을 생각하면 우리는 땅이 가지고 있고 제공하는 모든 것을 멸시하게 될 것이고, 성 이그나티오처럼 "오, 하늘을 보면 땅이 얼마나 역겹게 보이는지!"라고 말할 것입니다.
  사도 바울의 말씀에 따르면, "하나님께서 미리 아신 자들을 또한 그 아들의 형상을 본받게 하려고 미리 정하셨으니, 이는 그가 많은 형제 중에서 맏아들이 되게 하려 하심이니라" (로마서 8:29)고 하신 말씀에 따라, 우리는 우리의 주님이시며 구세주이신 예수 그리스도와 동등해져야 할 의무가 있으며, 선하고 깨끗한 양심으로 이 의무를 다해야 합니다.  
  따라서  우리가  부당하게 무엇인가를 취득 했다면 , 즉  강도, 절도, 사기, 고리대금 등으로 이웃의 재산을 손상시켰다면, 우리 는 모든 것을  돌려주고 피해를 보상할 의무가 있습니다. 왜냐하면 천국에서의 영원한 행복이 이 의무를 다하는 것에 달려 있기 때문입니다 .     

  하나님께서 열 번째 계명에서 금하신 것

이 계명에서 하나님께서는 우리 가 이웃    의 이익을 위해 부당한 욕망을 갖는 것을 금하십니다 !
  여기서 강조되는 것은 우리가 이웃의 소유물을 부당하게 욕망해서는 안 된다는 것입니다. 다른 사람의 소유물에 대한 욕망이 모두 죄이고 부당하며 열 번째 계명에 따라 금지된 것은 아니기 때문입니다. 우리가 이웃의 소유물을 정의롭고 허용되는 방법으로만 얻고자 할 때 우리는 결코 죄를 짓는 것이 아닙니다.
이것은 우리가 우리 밭    과 인접한 이웃의 밭을 사고 싶을 때 , 그리고 우리가 힘이나 교활함으로 그 밭을 우리 스스로 차지하려고 하지 않고,  이웃이 자발적으로 우리에게 팔거나 교환으로 주는 조건으로만 그 밭을 차지하려고 할 때의 예에서 볼 수 있습니다 .  그런 경우, 우리는 우리 이웃의 이익을 위해 부당하게 노력하지 않습니다. 즉, 우리는 불의한 방법으로 다른 사람의 이익을 얻고 싶어하지 않으며, 그렇기 때문에 우리는 죄를 짓지 않습니다. 
  그래서, 하나님의 열 번째 계명에 따르면,  우리는 다른 사람의 선을 불의한 방법으로 원하고 이웃을 희생하여 그것을 우리 자신에게 기꺼이 차지할 때 죄를 짓습니다. 
  이것의 눈에 띄는 예는 우리 이웃의 집에 돈이 많이 있다는 것을 알고 , 그 돈을 탐욕스럽게 탐 하여 그것을 훔쳐서 우리 자신에게 차지하기로 결정할 때입니다. 이 경우, 우리의 탐욕은 심각하게 죄가 됩니다. 왜냐하면 우리는 불의한 수단, 즉 고의적인 도둑질로 다른 사람의 선을 획득하고자 하기 때문입니다.     
  복음서의 예에 따르면, 나봇의 포도원을 원하는 아합의 탐욕이 바로 그런 것입니다. 아합은 공정하든 불공정하든 어떤 수단을 써서든 나봇의 포도원을 차지하려고 했습니다. 공정한 매수로 그것을 얻을 수 없었기 때문에, 그는 탐욕으로 살인적인 강도질을 저질러 그것을 차지하려고 했습니다. 그래서 성 요한 크리소스톰은 "탐욕은 세상에 모든 악을 가져오는 열정입니다."라고 말합니다.
  이제 간단하고 자세히 살펴보겠습니다. 불의한 선을 원하는 것이 어떤 죄 인지 생각해 보겠습니다. 
  불의한 선을 바라는 마음에서 죄를 짓는 사람들 중에는 무엇보다도  무역 에 종사하는 사람들이 있는데, 이들은 기근이나 높은 가격이 발생하기  를 바라 면서 가능한 한 비싼 가격으로 상품을 팔고자 합니다.  
그 와 주변에서 다른 사람이 사고파는 것을 원치 않는 상인들은   불공정한 이점을 얻고자 하는 욕망으로 실수를 범합니다 . 왜냐하면 그렇게 되면 만들어진 경쟁으로 인해 피해를 입기 때문입니다.        
  일반적으로, 다른 사람의 재산으로 부당하게 부유해지려는 모든 상인은 하나님의 열 번째 계명을 어기는 죄를 짓습니다.
  도덕적으로 상인은 적당한 이익을 추구하는 것은 허용되지만, 이웃의 곤경을 부당하게 횡령하는 데 사용하는 것은 허용되지 않습니다. 이웃의 곤경을 이용하는 것은 매우 죄스럽고 비난받을 만한 일입니다. 왜냐하면 그것은 사랑과 정의에 어긋나기 때문입니다.
 또한 상속권을 가진 자가  부모의 재산을 가능한 한 빨리 받기 위해 부모가 일찍 죽기를 바랄 때,    불의한 선을 바라는 죄를 짓는 것이다. 즉, 하느님께 부모를 가능한 한 빨리 이 세상에서 데려가 달라고 기도 하는  자는 부모의 재산을 가능한 한 빨리 처분할 수 있도록 죄를 짓는 것이다.
 부모를 죽여서 더 이상 부양하고 부양할 필요가 없게 되기를 바라는 자도    같은 죄를 지었습니다 . 그런 사람은 너무나 불경건해서 늙은 아버지나 어머니에게 오래 살았으니 죽을 때가 왔다고 얼굴을 마주보며 말할 수 있습니다.  그런 짓을 하는 사람은 하느님께서 자기 부모를 심판한 것과 같은 방식으로 자기를 심판하실까 두려워해야 하며, 부모에 대한 의무를 심각하게 어겼기 때문에 저승에서 끔찍한 형벌을 받을까 두려워해야 합니다. 그러므로 성경의 말씀이 그들의 마음에 새겨져야 합니다. "아버지를 학대하고 어머니를 쫓아내는 아들은 부끄럽고 타락한 자니라" (잠언 19:26).
    
  마찬가지로, 친척과 다른 친척들의 유산을 상속받기 위해 그들의 조기 사망을 기대하는  사람  도 죄를 짓습니다. 그러한 사람은 이웃에 대한 거룩한 가톨릭적 사랑으로 인해 매우 중대한 죄를 짓습니다. 왜냐하면 그는 생사의 유일한 주인이신 하느님의 정의에 접촉하기 때문입니다.
 마찬가지로, 평화를 좋아하지 않고 희생에 관계 없이 가능한 한 많은 명예를 얻거나 정복하기 위해 전쟁을 원하는 군인   도 불의한 선을 바라는 욕망으로 죄를 짓습니다  .
  그리고 의사인  그는  특정 질병이 나타나거나 부유한 환자가 오랫동안 회복되지 않을 때 기뻐하며 그들에게 가능한 한 오랫동안 의료비를 지불함으로써 이익을 얻으려고 하는 것도 실수를 범합니다.
 변호사인 사람이  관대한 소송과 장기 소송에만 신경을 쓴다면   실수를 범하는 것입니다 .
 장인인 사람   도 다른 사람에게 불행이 닥치기를 바라면 실수를 합니다  . 예를 들어, 더 많은 일을 해서 점점 더 많은 이익을 얻기 위해 불을 피우는 것입니다.
  이웃의 명예와 좋은 평판을 시기하여 그것이 가능한 한 빨리 없어지기를 바라는 사람과, 그것이 가능한 한 빨리 회복되기를 바라는 사람은   똑같이 중대한 죄를 짓는 것입니다.
  다른  사람의 명예를 탐하는 이런 욕심은 종종 가장 큰 불의로 이어진다. 왜냐하면 그는 이웃을 험담하고 중상모략하며, 자신의 이익을 위해 모든 방법으로 이웃을 모욕하고자 하기 때문이다.
 위에서 언급한 모든 예는 우리가 이웃의 행복을 기원 하고, 행복한 사람과 함께 기뻐하며, 슬퍼하는 사람과 함께 슬퍼하라는   거룩한 가톨릭 사랑에 어긋나는 죄를 짓는다는 것을 보여줍니다 . 
  일반적으로, 하나님의 열 번째 계명에 따르면, 우리는 이 세상의 일시적인 재물에 대한 무질서하거나 부당한 욕망을 가질 때 죄를 짓는다고 할 수 있습니다. 이러한 부당한 욕망에서 다른 사람의 재물에 대한 용납할 수 없는 탐욕뿐만 아니라 시기, 악의, 소송, 도둑질, 강도, 살인 및 기타 다른 악이 생겨납니다. 그래서 사도 바울은 탐욕이 모든 악의 근원이라고 올바르게 말합니다. "부자가 되고자 하는 자들은 유혹과 함정과 여러 가지 미친 것과 파괴적인 정욕에 빠져 사람을 파멸과 멸망으로 이끕니다. 돈을 탐하는 것이 모든 악의 근원이기 때문입니다" (딤전 6:9-10).  
  그러므로 당신은  탐욕이 마음에 들어오지 않도록 주의 깊게 마음을 살펴야 합니다. 이 세상의 어떤 좋은 것에 대한 무질서한 탐욕이 마음에 들어온다면, 우리는 즉시 그것을 제거하고 우리 자신에게서 그것을 거부해야 합니다. N은 결코 자신의 부를  늘리  거나 이웃에게 해를 끼치는 방식으로 자신을 부유하게 만들고 정의를 어기고 싶어해서는 안 됩니다. 한마디로, 우리는 십계명이 우리에게 금지하는 모든 것을 삼가야 하며  그것이 명령하는 모든 것을 부지런히 행해야 합니다. 아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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