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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내 아버지 집에는 거할 곳이 많도다." (요한복음 14:2)
천국 또는 낙원은 별보다 훨씬 높은 밝고 헤아릴 수 없는 공간으로, 가장 큰 행복이 지배하는 곳으로, 유한한 인간의 정신으로는 완전히 이해할 수 없습니다. 이 밝은 공간은 주 예수 그리스도께서 "내 아버지의 집에는 거처가 많도다" (요한복음 14:2)라고 말씀하실 때 하늘에 계신 아버지의 집으로 지정하셨습니다.
천국 또는 낙원은 모든 악에서 해방된 의로운 자들이 영원토록 형언할 수 없는 기쁨을 누리며 하나님을 직접 보는 곳입니다. 사도 바울은 이 장소를 다음과 같이 설명합니다. "눈으로 보지 못하고 귀로 듣지 못하며 사람의 마음에 떠오르지도 아니한 것은 하나님이 자기를 사랑하는 자들을 위하여 예비하신 것들이니라" (고전 2:9).
지상 생활에서 인간은 무수한 고통과 괴로움을 겪습니다. 추위, 더위, 배고픔, 목마름, 각종 질병, 죽음이 그의 일상입니다. 그의 삶의 여러 해 동안, 이른 아침부터 늦은 밤까지 끊임없는 노력이 그의 몸의 힘을 소모합니다. 악한 사람들은 종종 그에게 쓰라린 순간을 주고, 독설적인 혀로 그를 공격하고, 그를 의심하고, 그를 비방하고, 그의 명예와 좋은 이름을 빼앗습니다. 여러 가지 불행이 그에게 닥치고, 그가 오랜 세월 동안 얻은 모든 것이 순식간에 파괴될 수 있습니다. 여기에 더해 내적인 고통, 여러 가지 걱정과 괴로움이 있는데, 이는 어떤 외적인 괴로움보다 훨씬 더 마음을 어지럽힙니다. 한마디로, 지구는 인간에게 눈물의 골짜기입니다.
시락이 이렇게 말한 것은 옳은 말이다. "모든 인간에게는 가혹한 운명이 정해지고, 사람들의 아들들에게는 무거운 멍에가 지워지니, 그들이 어머니의 태에서 나온 날부터 모든 살아 있는 자의 어머니에게로 돌아가는 날까지 그러하리라"( 시락 40:1).
지상의 삶과는 달리, 천국에서 우리는 모든 사람에게 똑같은 불행한 운명에서 자유로울 것입니다. 거기에서 우리는 더 이상 배고프거나 목마르지 않을 것이고, 태양이나 다른 열에 타지 않을 것입니다.
사도 요한을 통해 주님은 우리에게 이렇게 확신시켜 주십니다. "그들은 다시는 주리지 아니하며 목마르지도 아니할 것이요 해나 더위도 그들을 치지 아니하리니 이는 보좌 가운데 계신 어린 양이 그들의 목자가 되어 생명수 샘으로 인도하실 것임이요 하나님이 그들의 눈에서 모든 눈물을 닦아 주실 것임이니라" (계 7:16-17).
조금 더 나아가 사도 요한을 통해서도 주님께서는 우리에게 이렇게 약속하십니다. "그분은 그들의 눈에서 모든 눈물을 닦아 주실 것이요, 다시는 죽음이 없고, 애통과 부르짖음과 고통도 다시는 없을 것입니다. 이전 것들이 다 사라져 버렸기 때문입니다 ."(계시록 21:4)
천국에 오면 우리는 친구를 잃을 수 없는 고향에 도착하게 되고, 적을 두려워할 필요가 없고, 아무것도 필요 없고 부족하지 않으며, 더 이상 태어나거나 죽지 않고, 해롭거나 유익하지 않으며, 영원한 삶을 살 수 있는 고향에 도착하게 됩니다.
오, 천국은 바로 이런 이유만으로도 얼마나 바람직한 곳입니까? 왜냐하면 그것은 우리를 모든 지상의 악에서 해방시켜 주기 때문입니다! 오, 우리를 이 세상에서 심하게 짓밟았던 모든 지상의 십자가가 우리에게서 제거될 때 얼마나 좋을까요! 그때서야 우리는 다윗처럼 "우리의 영혼은 새가 새잡이의 그물에서 벗어났음이라 그물이 끊어지고 우리는 벗어났도다" (시편 124:7)라고 말할 수 있을 것입니다.
오, 천국은 바로 이런 이유만으로도 얼마나 바람직한 곳입니까? 왜냐하면 그것은 우리를 모든 지상의 악에서 해방시켜 주기 때문입니다! 오, 우리를 이 세상에서 심하게 짓밟았던 모든 지상의 십자가가 우리에게서 제거될 때 얼마나 좋을까요! 그때서야 우리는 다윗처럼 "우리의 영혼은 새가 새잡이의 그물에서 벗어났음이라 그물이 끊어지고 우리는 벗어났도다" (시편 124:7)라고 말할 수 있을 것입니다.
천국에서 우리는 세상적인 모든 악뿐만 아니라 모든 영적인 악, 다시 말해 죄와 죄로 이끄는 모든 것에서 해방될 것입니다.
우리가 하느님의 특별한 은총 없이 지상에서 사는 한, 우리는 사소한 죄로부터 우리 자신을 완전히 보호할 수 없습니다. 우리가 그렇게 조심스럽게 살더라도, 양심을 면밀히 살펴보면 다양한 단점과 불완전함을 발견하지 않는 날은 거의 없습니다. 그리고 바로 이러한 관찰이 하느님을 사랑하는 우리의 영혼에 큰 고통을 초래하여, 사도 바울처럼 우리는 종종 "나는 곤고한 사람이로다! 누가 나를 이 사망의 몸에서 건져낼 것인가?" (롬 7:24)라고 한탄합니다.
게다가 우리는 항상 구원을 잃을 큰 위험에 처해 있습니다. 왜냐하면 우리는 연약한 그릇에 하나님의 은혜라는 보물을 담고 있기 때문입니다. 그리고 어떤 미덕도 우리를 위험으로부터 보호할 만큼 강하지 않습니다. 다윗은 얼마나 경건했고 사도 베드로는 얼마나 열심이 많았습니까? 하지만 그들은 넘어졌습니다.
우리 주변의 교만한 세상, 우리의 죄 많은 육체, 그리고 마귀는 똑같이 강력하고 교활한 세 원수이며, 항상 어디서나 우리를 위해 함정과 매복을 놓습니다. 우리는 항상 경계하고 싸워야 그들이 우리를 이기지 못하도록 해야 합니다. 욥은 "사람의 삶이 땅에서 싸움이 아니냐? 그는 품꾼과 같이 그의 날을 보내지 아니하느냐?" (욥 7:1)라고 말할 때 옳습니다.
우리 주변의 교만한 세상, 우리의 죄 많은 육체, 그리고 마귀는 똑같이 강력하고 교활한 세 원수이며, 항상 어디서나 우리를 위해 함정과 매복을 놓습니다. 우리는 항상 경계하고 싸워야 그들이 우리를 이기지 못하도록 해야 합니다. 욥은 "사람의 삶이 땅에서 싸움이 아니냐? 그는 품꾼과 같이 그의 날을 보내지 아니하느냐?" (욥 7:1)라고 말할 때 옳습니다.
그리고 천국에서는 모든 것이 달라질 것입니다. 악마가 더 이상 우리를 위해 함정을 놓을 수 없고, 교만한 세상이 더 이상 겉보기에 좋은 것, 사악한 본보기, 스캔들로 우리를 유혹할 수 없으며, 육신이 더 이상 정욕과 탐욕으로 우리를 파멸시킬 수 없기 때문입니다. 죄는 천국에 들어갈 수 없습니다. 왜냐하면 그곳에서 사소한 죄를 지을 수 없고, 더군다나 중대한 죄는 더더욱 지을 수 없기 때문입니다. 천국의 행복은 모든 죄를 배제하기 때문입니다.
우리가 죄를 지을 기회가 있고 언젠가 그 축복을 잃을까봐 끊임없이 두려워한다면 우리는 천국에서 축복을 받지 못할 것입니다. 그리고 바로 이 두려움 때문에 우리는 천국의 기쁨을 완벽하게 누리지 못할 것입니다.
행복이 가장 큰 선이므로 모든 악을 완전히 배제하며, 따라서 천국에서 축복받은 자들은 더 이상 죄를 지을 수 없고, 오히려 하나님의 행복한 모습을 온전히 즐길 수 있습니다.
우리는 죄가 하나님으로부터 돌아서고 피조물과 기꺼이 동의하는 것임을 알아야 합니다. 이 지상 생활에서 우리는 하나님으로부터 멀어지고 피조물에게 더 가까이 다가갈 수 있습니다. 왜냐하면 우리는 하나님에 대한 매우 불완전한 지식을 가지고 있기 때문입니다. 그러나 천국에서는 완전히 다릅니다 . 어느 날 우리는 신이 모든 위엄과 완벽함 속에서 축복받은 분임을 보게 될 것입니다. 이렇게 볼 때 , 우리 눈에 보이는 지상의 모든 것은 모든 아름다움을 잃고 아무것도 아닌 것으로 여겨질 것입니다. 그러므로 우리는 모든 아름다움과 선함의 총체인 신만을 사랑하고 다른 모든 것을 멸시할 것입니다. 그러므로 우리가 하늘에서 축복받은 자로서 죄를 지을 수는 없습니다.
죄를 통해 하느님을 거스르는 것이 불가능한 것, 모든 유혹과 위험으로부터의 자유, 항상 하느님과 교제할 수 있는 확실성은 복된 삶입니다. 이 복된 삶에서 죄는 더 이상 존재하지 않습니다. 왜냐하면 죄에 빠지고 죄를 지을 수 있는 위험이 없기 때문입니다.
그러므로 천국은 악이 없고, 괴로움, 유혹, 구원의 상실, 죄가 없는 곳이에요!
더욱이 천국은 악과 죄가 없는 곳일 뿐만 아니라, 말할 수 없는 기쁨이 있는 곳이기도 합니다!
우리는 필멸의 육신에 있는 동안, 우리의 인간적 한계로 인해, 이 말할 수 없는 기쁨을 온전히 이해하고 표현할 수 없습니다. 그것들은 위대하고, 수많고, 숭고합니다. 하나님의 영으로 깨우침을 받은 위대한 선지자 다윗은 천국에 대해 그저 즐거운 곳이라고 말할 수밖에 없었습니다. "만군의 여호와여, 당신의 거처가 얼마나 즐거운지요" (시 84:2).
우리는 필멸의 육신에 있는 동안, 우리의 인간적 한계로 인해, 이 말할 수 없는 기쁨을 온전히 이해하고 표현할 수 없습니다. 그것들은 위대하고, 수많고, 숭고합니다. 하나님의 영으로 깨우침을 받은 위대한 선지자 다윗은 천국에 대해 그저 즐거운 곳이라고 말할 수밖에 없었습니다. "만군의 여호와여, 당신의 거처가 얼마나 즐거운지요" (시 84:2).
아직 살아 있는 동안 하늘로 올라간 사도 바울은 우리가 필멸의 몸 안에 있는 동안은 하늘의 형언할 수 없는 기쁨과 행복을 온전히 이해하고 표현할 수 없다고 확증합니다.그는 이에 대해 "눈으로 보지 못하고 귀로 듣지 못하고 사람의 마음에 떠오르지도 아니한 것은 다 하나님이 자기를 사랑하는 자들을 위하여 예비하신 것들이니라" (고린도전서 2:9)라고 말했습니다.
천국에서 축복받은 자들은 헤아릴 수 없을 만큼 위엄 있는 하나님을 바라보고, 뜨거운 사랑으로 그분을 사랑하며, 그분과 가장 긴밀히 연합하고, 형언할 수 없는 기쁨으로 그분을 소유합니다.
천국에서 축복받은 자들이 하나님을 본다는 것은 주님의 이 말씀에서 분명히 알 수 있습니다. "마음이 청결한 자들은 복이 있나니 그들이 하나님을 볼 것임이요!" (마태복음 5:8).
사도 바울도 이렇게 말합니다. "지금은 거울로 보는 것같이 희미하나 그때에는 얼굴과 얼굴을 마주보겠습니다!" (고린도 전서 13:12).
사도 바울은 이 말씀으로, 이 필멸의 지상 생활에서 우리는 하나님을 불완전하게 보고, 그의 본질과 진실로 보지 못한다는 것을 우리에게 말하고자 합니다. 우리는 피조물을 통해 하나님을 형상으로 보고, 그 형상에서는 그의 신성의 일부만 볼 수 있습니다.
지상과는 달리, 천국에서 우리는 하나님과 마주 서서 그의 진실과 위엄을 직접 바라보고, 천사와 성인들과 함께 말할 수 없는 기쁨과 행복을 누릴 것입니다. 사도 요한은 "우리는 그를 있는 그대로 볼 것입니다" 라고 말하면서 이것을 확신시켜 줍니다 (요한일서 3:2).
그러므로 천국은 주님의 이 부르심을 듣는 행운아들만을 기다리고 있습니다. "내 아버지께 복을 받은 자들아, 와서 세상 창조 이래 너희를 위하여 준비된 나라를 상속받으라!" (마태복음 25:34).
이 부르심에는 말로 표현할 수 없는 기쁨과 즐거움이 담겨 있으며, 이 부르심이 우리에게 전달된다면 우리에게 얼마나 큰 축복이겠습니까?왜냐하면 사도 바울이 분명히 말한 바와 같기 때문입니다. "눈으로 보지 못하고 귀로 듣지 못하고 사람의 마음에 떠오르지도 아니한 것을 하나님께서 자기를 사랑하는 자들을 위하여 예비하셨느니라" (고린도전서 2: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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