정교회 기독교인에게 거룩한 믿음과 희망은 신학적 미덕이기 때문에 우리를 하느님께로 인도하지만, 사랑처럼 완벽하지는 않습니다.
신앙 은 우리에게 신을 아는 법을 가르쳐 주고 신을 우리의 가장 위대하고 완전한 선으로 여기고자 하는 열망을 일깨워 주지만 그 이상은 아닙니다. 반면에 소망은 우리가 모든 소망이 향하는 신과의 연합을 확신을 가지고 기대하게 하지만 우리를 그분께 더 가까이 데려다 줄 수는 없습니다 . 우리의 갈망의 본질과 단결 우리 와 그분 .
이 두 가지 신학적 미덕이 아무리 숭고하더라도 그것은 우리에게 멀리서 하나님을 보여줄 뿐 우리를 하나로 묶을 수 없기 때문에 여전히 불완전합니다.
그와 함께. 그러나 하느님에 대한 사랑은 다릅니다. 하느님에 대한 사랑은 끊임없이 우리를 하느님께로 인도하고, 우리를 그분과 가장 밀접하게 연합시키며, 우리가 하느님을 소유하게 합니다. 왜냐하면 주님께서는 이렇게 말씀하셨기 때문입니다. 누구든지 나를 사랑하면 내 말을 지킬 것이요, 내 아버지께서 그를 사랑하실 것이요, 우리가 그에게 가서 그와 함께 거하리라 (요한복음 14:23).
그와 함께. 그러나 하느님에 대한 사랑은 다릅니다. 하느님에 대한 사랑은 끊임없이 우리를 하느님께로 인도하고, 우리를 그분과 가장 밀접하게 연합시키며, 우리가 하느님을 소유하게 합니다. 왜냐하면 주님께서는 이렇게 말씀하셨기 때문입니다. 누구든지 나를 사랑하면 내 말을 지킬 것이요, 내 아버지께서 그를 사랑하실 것이요, 우리가 그에게 가서 그와 함께 거하리라 (요한복음 14:23).
사도 요한은 이렇게 주장합니다 . "사랑 안에 거하는 자는 하나님 안에 거하고 하나님도 그 사람 안에 거하시느니라" (요일 4:16).
오, 하나님의 사랑은 얼마나 위대하고 놀라운지요. 그것은 우리를 하나님께로 인도하고 그분과 연합시키기 때문입니다. 그러면 우리 는 완전히 행복해집니다. 왜냐하면 아가서의 신부처럼 우리는 " 내 사랑하는 자는 내 것이요, 나는 그의 것이로다" 라고 말할 수 있기 때문입니다 (아가서 2:16).
만일 우리가 세상이 그 종들에게 내려주는 부 와 재물, 명예, 존엄성, 그리고 다른 좋은 것들 로 가득 찬다면 , 이 모든 것이 하나님을 향한 사랑의 미덕이 우리를 인도하는 행복에 비하면 무엇이겠습니까 ?
세상적인 모든 것은 잠시뿐이며 인간의 마음을 만족시킬 수 없습니다. 그러나 우리가 하나님을 소유하게 되면 우리는 모든 것을 소유하게 됩니다. 왜냐하면 우리는 이미 이 세상에서 우리를 위로와 기쁨으로 채워 주는 가장 큰 선을 누리고 있으며, 저 세상에서는 우리를 형언할 수 없을 만큼 축복해 주기 때문입니다. 사도 바울은 " 눈으로 보지 못한 것, 귀로 듣지 못한 것, 사람의 마음에 떠오르지 아니한 것까지도 하나님이 자기를 사랑하는 자들을 위하여 예비하신 것" (고전 2:9)이라고 주장합니다.
그러므로 우리가 우리의 마음을 하나님으로부터 돌려 세상에 준다면 우리는 완전히 비이성적이고 지혜롭지 못한 정교회 기독교인입니다. 그렇게 함으로써 우리는 귀중한 진주를 돌보지 않고 대신 색유리 조각을 가져가는 어리석은 아이와 같습니다.그러므로 우리가 이성적이고 신중한 기독교인 이라면 우리는 하늘에 있는 성인을 따르고 온 마음을 다해 하나님을 사랑하여 하나님께서 우리와 함께 거하시고 우리 를 축복 해 주실 의무가 있습니다 . 아멘!
Nema komentara:
Objavi komenta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