하나님의 첫 번째 계명
"나는 너를 애굽 땅에서, 종살이하던 집에서 인도해 낸 네 하나님 여호와이다. "너는 나 외에 다른 신을 섬기지 말라" (출애굽기 20:2-3)
모든 계명이 무언가를 요구하거나 명령하거나 금지하는 것처럼 하나님의 첫 번째 계명도 마찬가지입니다. 그것은 창조주이신 하나님께 대한 존경심을 보일 의무를 명령하며, 그 존경심을 다른 누구에게 보이는 것을 금지합니다.
존경에 대해 말할 때는, 그것은 누군가의 장점과 공로를 인정하는 것으로 표현되며, 동시에 필요하다면 복종하는 모습도 보여준다는 것을 말할 필요가 있습니다. 따라서 우리가 합리적이고 정의롭다면, 우리는 하나님이 우리에게 가장 가까이 계시고, 하나님이 우리의 가장 큰 선이며, 우리가 그분께 완전히 의존하고 있고, 따라서 우리는 그분께 최대한의 존경을 표할 의무가 있다는 것을 압니다. 이 사실은 복음서의 이 말씀에서 우리에게 분명하게 드러납니다. "우리는 그분 안에서 살고 움직이며 존재합니다" (사도행전 17:28) .
그리고 이 가장 큰 존경심은 오로지 신께만 속하는 것으로, 이를 예배라고 합니다. 우리의 모든 덕성 있는 삶, 지상의 행복, 그리고 영원한 구원이 하나님에 대한 이러한 숭배에 달려 있다는 것을 즉시 강조할 필요가 있습니다.
신에 대한 경의 또는 예배
우리는 하나님을 최고의 주님으로 인정하고, 그분께 완벽하게 경의를 표하고 순종할 때 하나님께 대한 존경심을 나타냅니다. 이런 존중은 내부적일 수도 있고 외부적일 수도 있습니다. 영혼에 대한 존중은 내적인 것이고, 육체에 대한 존중은 외적인 것입니다.
우리가 하나님에 대한 존경심에 관해 말할 때, 반드시 이렇게 말해야 합니다.
우리가 어떻게 내면적으로 하나님을 공경하는가
우리는 어떻게 외적으로 하나님을 공경합니까?
우리가 하나님께 드려야 할 존경심을 어기는 죄
우리가 어떻게 내면적으로 하나님을 공경하는가
우리는 내면적으로 하나님을 공경합니다.
믿음과 소망과 사랑으로
경외심과 숭배심으로
삶의 모든 선물에 감사하며
그의 명예에 대한 열정으로
그의 거룩한 뜻에 대한 순종과 헌신으로
믿음과 소망과 사랑으로
경건함의 내적 방식에는 주로 믿음, 희망, 사랑이라는 세 가지 신학적 미덕이 포함됩니다!
믿음은 하나님께서 계시하신 모든 것과 거룩한 교회가 믿기로 하는 모든 것을 진실로 받아들이는 것입니다.
하나님은 영원하고 무오한 진리이시며, 거룩한 기독교 신앙의 견고한 토대이십니다. 우리는 하나님의 계시가 우리에게 완벽하게 분명하기 때문에 믿는 것이 아니고, 하나님 외에 믿을 만한 다른 이유가 있기 때문에 믿는 것이 아닙니다. 오직 속일 수 없고 속을 수 없는 하나님을 영원하고 거룩한 진리로 인정하기 때문에 믿는 것입니다. 이러한 이유로 우리는 신앙으로 우리의 이성을 신에게 복종시키고, 우리가 완전히 이해하지 못하는 것조차도 의심 없이 진리라고 믿습니다. 하나님께서 오직 진실만을 계시하신다는 것을 아는 것과 경외심은 우리로 하여금 믿음으로 가득 찬 마음으로 하나님께 항복하게 만듭니다. 비록 믿음이 우리가 완전히 이해할 수 없는 신비이더라도 말입니다.
우리가 하나님을 거룩하고 영원하며 무오한 진리로 인정하고, 그분께 우리 자신을 완벽하게 바칠 때, 우리는 믿음으로 하나님을 공경한다고 정당하게 말할 수 있습니다.
우리가 하나님을 거룩하고 영원하며 무오한 진리로 인정하고, 그분께 우리 자신을 완벽하게 바칠 때, 우리는 믿음으로 하나님을 공경한다고 정당하게 말할 수 있습니다.
희망에 대해서도 똑같은 말을 할 수 있습니다. 거룩한 그리스도인의 희망은 하나님께서 우리에게 약속하신 모든 것을 굳건한 확신을 가지고 기대하는 것입니다!
그러므로 우리가 소망을 갖는 이유는 말로 표현할 수 없을 만큼 가능하시고, 충실하시고, 친절하시고, 자비로우시고, 거룩하신 하나님입니다. 다시 말해, 우리는 하나님께서 무한히 가능하시고, 신실하시고, 친절하시고, 자비로우시고, 거룩하시기 때문에 약속된 좋은 일을 바랍니다. 따라서 우리가 하나님의 헤아릴 수 없는 능력, 성실함, 선함, 자비, 그리고 거룩함을 인정하고, 그분께 우리 자신을 온전히 바치며, 하나님께서 우리에게 약속하신 것을 주실 수 있고 주실 것이라고 굳게 믿을 때, 우리는 소망으로 하나님을 공경한다고 할 수 있습니다.
더 나아가, 우리는 거룩한 그리스도인 사랑을 통해 하나님께 영광을 돌립니다!
하나님에 대한 완전한 사랑은 그분을 그 자체로 사랑하는 것입니다. 즉, 그분이 무한히 가능하고, 충실하고, 선하고, 자비롭고, 거룩하시기 때문입니다.
우리가 하나님을 사랑할 때, 우리는 그리스도교 신앙의 빛을 통해 그분이 가장 완전하고 가장 사랑스러운 선이라는 것을 알게 됩니다. 그러면 우리는 오직 하나님만이 사랑받을 만한 것, 즉 헤아릴 수 없는 힘, 지혜, 선함, 충실함, 엄청난 위엄, 아름다움, 그리고 거룩함을 소유하고 계시다는 것을 인정합니다. 이것이 우리가 하나님께 나아가기를 원하는 이유이며, 그분과 시간적으로나 영원토록 연합하는 것보다 더 큰 갈망이나 거룩한 소망은 없다는 것을 우리는 알고 있습니다. 그렇기 때문에 사랑은 하나님을 공경하는 가장 높은 방법입니다. 왜냐하면 사랑은 하나님의 모든 완전함을 이해하고 그분께 자신을 완전히 바치기 때문입니다.
우리가 하나님을 사랑할 때, 우리는 그리스도교 신앙의 빛을 통해 그분이 가장 완전하고 가장 사랑스러운 선이라는 것을 알게 됩니다. 그러면 우리는 오직 하나님만이 사랑받을 만한 것, 즉 헤아릴 수 없는 힘, 지혜, 선함, 충실함, 엄청난 위엄, 아름다움, 그리고 거룩함을 소유하고 계시다는 것을 인정합니다. 이것이 우리가 하나님께 나아가기를 원하는 이유이며, 그분과 시간적으로나 영원토록 연합하는 것보다 더 큰 갈망이나 거룩한 소망은 없다는 것을 우리는 알고 있습니다. 그렇기 때문에 사랑은 하나님을 공경하는 가장 높은 방법입니다. 왜냐하면 사랑은 하나님의 모든 완전함을 이해하고 그분께 자신을 완전히 바치기 때문입니다.
성. 어거스틴은 하나님께서 특히 믿음, 소망, 사랑을 통해 영광을 얻으신다고 말하고 가르칩니다. 우리는 하나님께 합당한 영광을 돌리기 위해 이 세 가지 미덕을 우리 자신 안에서 일깨워야 합니다.
이 세 가지 신학적 미덕을 다른 기도와 함께 자주 하느님께 기도하는 것은 아름답고 칭찬할 만한 관습입니다. 우리는 이러한 미덕을 위해 집중적이고 경건한 마음으로 기도할 의무가 있으며, 이를 통해 우리가 하나님께 드려야 할 존경심을 표현할 수 있습니다.
이 세 가지 신학적 미덕을 다른 기도와 함께 자주 하느님께 기도하는 것은 아름답고 칭찬할 만한 관습입니다. 우리는 이러한 미덕을 위해 집중적이고 경건한 마음으로 기도할 의무가 있으며, 이를 통해 우리가 하나님께 드려야 할 존경심을 표현할 수 있습니다.
거룩한 기독교 신앙, 소망, 사랑 없이, 즉 하나님에 대한 경외의 내적 방식에서 이 첫 번째이자 절대적으로 필수적인 부분 없이는, 누구도 하나님을 외적인 방식으로, 또는 전혀 올바르게 경외할 수 없습니다. 따라서 우리는 이 세 가지 신학적 미덕에 담긴 모든 것을 알아야 할 의무가 있다고 말할 필요가 있습니다. 이것들이 없이는 하나님의 첫 번째 계명을 올바르게 이행하는 것이 불가능합니다.
경외심과 숭배심으로
우리는 완벽한 경외심과 예배로 하나님을 경배합니다. "아들은 아버지를 공경하고, 종은 주인을 공경한다." 하지만 내가 아버지라면, 내 명예는 어디에 있는가? 내가 주인이면 나를 두려워하는 것이 어디 있느냐?” (말라기 1:6)
선지자 말라기의 위의 말씀을 통해, 하나님께서는 왜 우리가 그분께 완벽한 경의를 표해야 하는지 보여주고자 하십니다.
하나님은 우리의 주인이시고, 우리는 그분의 종입니다. 하나님은 우리의 아버지이시고, 우리는 그분의 자녀입니다. 하인은 주인을 존경하는 것이 의무인가, 자식은 아버지를 존경하는 것이 의무인가?
하나님이 우리의 가장 위대한 통치자, 주인, 그리고 사랑이 많은 아버지이신데, 우리가 하나님께 대한 경의를 잊을 수 있겠습니까? 거룩한 하늘의 영들이 하나님 앞에 면류관을 씌우고, 얼굴을 땅에 대고 엎드려 "찬송과 영광과 지혜와 감사와 존귀와 권능과 능력이 우리 하나님께 세세토록 있을지어다!" (요한계시록 7:12) 라고 말할 때, 그들이 하나님에 대해 갖는 경외심은 얼마나 크고 거룩한 것일까요 . 그러므로 우리 역시 하나님의 헤아릴 수 없는 위엄 앞에서 가장 깊이 겸손해져야 하며, 종종 "오, 하나님, 당신은 무엇이시며, 저는 무엇입니까?"라고 말해야 할 것입니다. 당신은 전능하신데, 저는 혼자서는 좋은 일을 하나도 할 수 없는 약한 존재예요. 당신은 거룩함 그 자체이고, 나는 경멸과 처벌 외에는 아무것도 받을 자격이 없는 불쌍한 죄인입니다. 당신은 영원하시고, 나는 곧 먼지와 재로 변할 필멸의 몸을 가진 존재입니다. "당신은 전지전능하고 나는 무지합니다. 다시 말해, 당신은 모든 것이고 나는 아무것도 아닙니다!"
하나님이 우리의 가장 위대한 통치자, 주인, 그리고 사랑이 많은 아버지이신데, 우리가 하나님께 대한 경의를 잊을 수 있겠습니까? 거룩한 하늘의 영들이 하나님 앞에 면류관을 씌우고, 얼굴을 땅에 대고 엎드려 "찬송과 영광과 지혜와 감사와 존귀와 권능과 능력이 우리 하나님께 세세토록 있을지어다!" (요한계시록 7:12) 라고 말할 때, 그들이 하나님에 대해 갖는 경외심은 얼마나 크고 거룩한 것일까요 . 그러므로 우리 역시 하나님의 헤아릴 수 없는 위엄 앞에서 가장 깊이 겸손해져야 하며, 종종 "오, 하나님, 당신은 무엇이시며, 저는 무엇입니까?"라고 말해야 할 것입니다. 당신은 전능하신데, 저는 혼자서는 좋은 일을 하나도 할 수 없는 약한 존재예요. 당신은 거룩함 그 자체이고, 나는 경멸과 처벌 외에는 아무것도 받을 자격이 없는 불쌍한 죄인입니다. 당신은 영원하시고, 나는 곧 먼지와 재로 변할 필멸의 몸을 가진 존재입니다. "당신은 전지전능하고 나는 무지합니다. 다시 말해, 당신은 모든 것이고 나는 아무것도 아닙니다!"
그러므로 만일 우리가 하나님에 대한 완전한 경외심으로 가득 찬다면, 우리는 그분 앞에 겸손하게 나아가 그분을 경배할 것입니다.
영을 하나님께 높이는 것은 하나님에 대한 우리의 숭배의 표현이며, 이 높이는 특히 기도를 통해 이루어지는데, 기도는 찬양, 감사, 중보, 간구의 기도가 될 수 있습니다.
기도 외에도 우리는 희생, 약속, 서원을 통해 하나님께 예배를 드립니다!
영을 하나님께 높이는 것은 하나님에 대한 우리의 숭배의 표현이며, 이 높이는 특히 기도를 통해 이루어지는데, 기도는 찬양, 감사, 중보, 간구의 기도가 될 수 있습니다.
기도 외에도 우리는 희생, 약속, 서원을 통해 하나님께 예배를 드립니다!
하나님을 경배한다는 것은 그분의 무한한 위엄을 존경하고 감사하며 그분 앞에 자신을 낮추고 그분을 자신의 시작이자 최종 목표, 즉 모든 것의 주님이자 무한한 주인으로 인정하는 것에 불과합니다. 그러므로 우리는 경외심을 가지고 자신을 낮추고 하나님께 엎드려야 합니다. 왜냐하면 우리는 하나님의 피조물로서 하나님께 완전히 의지하고 있기 때문입니다.
우리는 우리가 가진 모든 것과 우리가 된 모든 것에 대해 신에게 감사해야 할 의무가 있으며, 우리의 주님이자 창조주께 대한 존경과 숭배를 매우 분명하게 표현해야 할 의무가 있습니다. 그러므로 겸손한 마음으로 우리의 의무를 다하며, 종종 이렇게 말합시다. "말로 다할 수 없이 위대하고 사랑이 많으신 하나님이시여, 저는 당신 앞에 절하고 당신 앞에서 깊이 겸손히 나 자신을 낮추나이다." 주님은 나의 주님이시며 창조주이십니다. 저는 제가 존재하는 모든 것과 제가 가진 모든 것에 대해 당신께 감사드립니다. 나의 순종과 겸손으로 당신께 드리는 은혜로운 존경을 받아주십시오. 내 운명은 당신의 손에 달려 있습니다. 당신이 원하는 대로 해주세요. 저는 제 자신을 완전히 당신의 뜻에 맡깁니다. 나는 당신을 위해 살고, 나는 당신을 위해 죽습니다. 나는 살아도 죽어도 당신의 것입니다!''
우리는 우리가 가진 모든 것과 우리가 된 모든 것에 대해 신에게 감사해야 할 의무가 있으며, 우리의 주님이자 창조주께 대한 존경과 숭배를 매우 분명하게 표현해야 할 의무가 있습니다. 그러므로 겸손한 마음으로 우리의 의무를 다하며, 종종 이렇게 말합시다. "말로 다할 수 없이 위대하고 사랑이 많으신 하나님이시여, 저는 당신 앞에 절하고 당신 앞에서 깊이 겸손히 나 자신을 낮추나이다." 주님은 나의 주님이시며 창조주이십니다. 저는 제가 존재하는 모든 것과 제가 가진 모든 것에 대해 당신께 감사드립니다. 나의 순종과 겸손으로 당신께 드리는 은혜로운 존경을 받아주십시오. 내 운명은 당신의 손에 달려 있습니다. 당신이 원하는 대로 해주세요. 저는 제 자신을 완전히 당신의 뜻에 맡깁니다. 나는 당신을 위해 살고, 나는 당신을 위해 죽습니다. 나는 살아도 죽어도 당신의 것입니다!''
삶의 모든 선물에 감사하며
감사하는 마음은 또한 하나님에 대한 존경심을 표현하는 한 형태입니다! 우리가 감사하는 마음을 갖는다면, 우리가 가진 모든 좋은 것은 하나님으로부터 온다는 것을 알게 되고, 그렇기 때문에 우리는 교만하거나 자랑할 수 없으며, 우리 자신의 것을 가지고 있다고 자랑할 수 없게 됩니다. 따라서 우리는 감사하는 마음을 통해 하나님께 합당한 존경을 표하게 됩니다. 사도 바울은 이것에 대해 분명히 말합니다. "네가 가진 것 중에 받지 아니한 것이 무엇이냐?" "네가 받았거든 어찌 받지 아니한 것같이 자랑하느냐?" (고전 4:7)
하느님께서는 우리에게 몸과 생명, 건강, 음식, 그리고 다른 현세적 재화뿐만 아니라 이성과 자유의지를 부여받은 불멸의 영혼도 주셨습니다. 우리는 또한 하나님으로부터 유일하고 올바르고 구원에 이르는 거룩한 기독교 신앙을 받았는데, 그 신앙에는 우리 영혼의 구원을 위한 많은 수단이 있습니다. 그러므로 우리는 모든 좋은 선물과 완전한 선물은 오로지 하나님에게서만 온다는 것을 알고 인정하며, 바로 이 때문에 하나님께 감사하는 것이 우리의 기본적이고 가장 큰 의무라는 것을 압니다.
하나님께서는 우리에게 그분을 큰 소리로 인정하기를, 즉 찬양하고, 존귀하게 여기고, 영광을 돌리기를 요구하십니다. 또한 우리가 받은 좋은 것에 대해 끊임없이 감사하기를 요구하십니다. 사실, 하나님께 감사하지 않는 사람은 하나님을 주님이자 자신의 가장 큰 은인으로 인정하지 않는 것입니다.
배은망덕한 사람은 하나님께 의지하기를 원치 않아서 그 영광을 자기가 차지함으로써 그 영광을 오직 하나님께만 속한 것으로부터 빼앗아갑니다. 그렇게 함으로써 그는 하나님에 대한 경의의 의무를 다하지 못하고 크고 중대한 죄를 범하게 됩니다. 그러므로 하나님은 배은망덕한 자를 가장 멸시하시고, 그들에게 분노를 쏟으신다. 이것은 이스라엘 백성이 우상을 섬기고, 하나님께 등을 돌리고, 하나님으로부터 받은 모든 은혜를 잊었을 때, 하나님께서 예언자 예레미야를 통해 그들에게 하신 말씀에서 분명히 알 수 있습니다. "내 백성은 돕지 않는 자와 영광을 바꾸었다!" 하늘아, 이 일에 놀랄지어다. 놀라고 무서워할지어다. 여호와의 말씀이다. 내 백성이 두 가지 악을 행하였으니 곧 그들이 생수의 근원인 나를 버렸고 스스로 저수조를 팠으니, 곧 물을 담을 수 없는 터진 저수조들이니라” (예레미야 2:11-13).
주 예수 그리스도께서는 자신이 고쳐 준 나병 환자 열 명 중 아홉 명이 자신이 베푼 친절에 대해 감사를 표하러 오지 않자 기분이 상하셨습니다. 그러자 예수께서 말씀하셨다. "열 사람이 다 깨끗해지지 아니하였느냐?" 나머지 9명은 어디에 있나요? "그 중에 한 사람도 돌아와서 하나님께 감사를 드린 자가 발견되지 아니하였으니 오직 이 외국인뿐이더라!" (누가복음 17:17-18)
따라서 우리가 합리적이고 정의롭다면, 우리는 이런 배은망덕한 사람들의 발자취를 따르지 않고 오히려 하나님을 공경하고 그분께서 매일 우리에게 내려주시는 모든 좋은 것에 감사할 것입니다.
아침에 일어나면 우리는 밤새도록 그토록 은혜롭게 우리를 지켜 주시고, 하루 종일 하나님을 섬길 수 있게 해 주신 하나님께 감사드립니다.
우리는 하루 동안 받은 좋은 것에 대해 매일 식사하고 술을 마신 후, 그리고 저녁에도 신에게 감사드립니다. 우리는 거룩한 교회의 일원이 되어 쉽게 구원을 얻고 축복을 받을 수 있게 해 주신 그 분께 특별히 감사드립니다.
아침에 일어나면 우리는 밤새도록 그토록 은혜롭게 우리를 지켜 주시고, 하루 종일 하나님을 섬길 수 있게 해 주신 하나님께 감사드립니다.
우리는 하루 동안 받은 좋은 것에 대해 매일 식사하고 술을 마신 후, 그리고 저녁에도 신에게 감사드립니다. 우리는 거룩한 교회의 일원이 되어 쉽게 구원을 얻고 축복을 받을 수 있게 해 주신 그 분께 특별히 감사드립니다.
우리는 또한 하나님의 거룩한 뜻에 따라 받은 은총을 활용하여 경건하고 덕이 높은 삶을 실천함으로써 감사를 표현합니다. 그러한 감사는 하나님을 기쁘시게 하며, 그분께서 계속해서 자비로운 손길을 펼쳐 충실한 종에게 선을 베푸실 것이라는 확신을 줍니다.
그의 명예에 대한 열정으로
우리는 하나님의 영광을 위한 열의로 그분께 영광을 돌립니다!
어떤 사람이 누군가를 소중히 여길 때, 그는 다른 사람들이 자신을 멸시한다는 사실에 무관심한 것이 아니라, 오히려 다른 사람들이 자신이 받아 마땅한 존경을 표하기를 원한다. 만약 그가 꾸중을 듣거나 모욕을 당하면 그는 자신의 명예를 힘차게 지킬 것입니다.
그와 같이 우리의 마음이 하나님에 대한 깊은 경외심으로 가득 차면, 하나님에 대한 우리의 행동도 그와 같을 것입니다. 그러면 우리의 가장 큰 소망은 모든 사람이 하나님께 합당한 존경을 표하는 것을 보는 것이 될 것입니다. 그러나 반대로 사람들이 하나님께 필요한 것을 보이지 않는 것을 볼 때, 우리는 깊은 슬픔을 느끼게 될 것입니다.
그와 같이 우리의 마음이 하나님에 대한 깊은 경외심으로 가득 차면, 하나님에 대한 우리의 행동도 그와 같을 것입니다. 그러면 우리의 가장 큰 소망은 모든 사람이 하나님께 합당한 존경을 표하는 것을 보는 것이 될 것입니다. 그러나 반대로 사람들이 하나님께 필요한 것을 보이지 않는 것을 볼 때, 우리는 깊은 슬픔을 느끼게 될 것입니다.
그러므로 하나님의 영광을 위한 열의는 분명히 하나님에 대한 경의의 표현에 속합니다. 그러므로 하나님을 충실하게 예배하는 모든 사람들이 그분의 영광을 위해 불타는 열정을 품고 있었던 것은 놀라운 일이 아닙니다. 다윗은 열렬한 열정으로 "당신의 집을 향한 열정이 나를 삼켜버렸고, 당신을 비웃는 자들의 비방이 나에게 떨어졌습니다" 라고 말합니다 (시 69:10).
이와 같은 열정으로 인해 사도 바울은 “나는 생명을 전혀 귀중히 여기지 아니하노라” 고 말했습니다. "오직 주 예수께 받은 사명 곧 하나님의 은혜의 복음을 증거하는 사명을 마치려 함이로다" (사도행전 20:24)
특히 주 예수 그리스도께서 하늘에 계신 아버지의 영광을 위해 바쁘신 것을 볼 수 있습니다. 그는 3년 동안 이스라엘 전역을 여행하며, 거룩한 복음을 전파하고, 다양한 기적을 행하고, 깨어 기도하며, 박해와 고통을 인내심 있게 견뎌냈고, 어떤 것에 대해서도 조금도 불평하지 않았습니다. 결국, 예수께서는 십자가에서 죽으심으로써 하늘에 계신 아버지께 하나님으로서 마땅히 받아야 할 영광을 나타내셨습니다.
하나님의 이름은 모든 죄로 인해 더럽혀지므로, 주 예수 그리스도와 사도들, 그리고 모든 합리적이고 의로운 하나님의 종들은 사람들 사이의 불의와 죄를 파괴하고 그들을 덕행 있는 삶을 통해 하나님께로 인도하는 데 전념했습니다. 이러한 노력 속에서 그들은 어떠한 고난이나 스트레스도 두려워하지 않았으며, 온갖 고통과 박해를 견뎌냈고, 많은 사람들은 심지어 자신의 목숨을 희생하기까지 했습니다.
이와 마찬가지로 오늘날 우리는 하나님의 영광을 위한 우리의 열정을 증명할 의무가 있습니다. 우리가 합리적이고 의롭다면, 특히 오늘날처럼 온갖 죄로 인해 하나님의 이름이 크게 더럽혀지고 있는 때에, 우리는 이 의무를 수행할 의무가 있습니다.
실제로 우리가 그토록 많은 죄를 차분히 바라볼 수 있다면, 우리는 하나님을 사랑하지 않으며 그분의 명예에 대해 전혀 관심이 없다는 것을 분명히 보여주는 것입니다. 우리에게 열정이 있다면, 우리는 하느님께 가해진 모욕을 줄이기 위해 할 수 있는 모든 것을 할 의무가 있습니다. 즉, 스캔들과 죄를 없애고, 덕과 거룩한 가톨릭 신앙을 퍼뜨리는 것입니다.
우리가 부모라면 특별한 역할을 해야 합니다. 왜냐하면 우리는 우리 자신과 우리 아이들, 그리고 온 가족이 어떤 사람들과 어울리는지 주의 깊게 살펴야 할 의무가 있기 때문입니다. 저주와 더러운 말, 죄악적인 교제, 도박, 술 취함 등을 통해 하나님께 모욕을 가하는 것은 옳지 않습니다. 우리는 가족들에게 종교 생활의 좋은 본보기가 되어야 하며, 그들이 부지런히 기도하고, 일요일과 공휴일에 경건하게 예배에 참석하고, 자주 고백하고 성찬에 참여하며, 덕이 있는 그리스도교 생활을 꾸준히 이어가도록 격려해야 할 의무가 있습니다.
실제로 우리가 그토록 많은 죄를 차분히 바라볼 수 있다면, 우리는 하나님을 사랑하지 않으며 그분의 명예에 대해 전혀 관심이 없다는 것을 분명히 보여주는 것입니다. 우리에게 열정이 있다면, 우리는 하느님께 가해진 모욕을 줄이기 위해 할 수 있는 모든 것을 할 의무가 있습니다. 즉, 스캔들과 죄를 없애고, 덕과 거룩한 가톨릭 신앙을 퍼뜨리는 것입니다.
우리가 부모라면 특별한 역할을 해야 합니다. 왜냐하면 우리는 우리 자신과 우리 아이들, 그리고 온 가족이 어떤 사람들과 어울리는지 주의 깊게 살펴야 할 의무가 있기 때문입니다. 저주와 더러운 말, 죄악적인 교제, 도박, 술 취함 등을 통해 하나님께 모욕을 가하는 것은 옳지 않습니다. 우리는 가족들에게 종교 생활의 좋은 본보기가 되어야 하며, 그들이 부지런히 기도하고, 일요일과 공휴일에 경건하게 예배에 참석하고, 자주 고백하고 성찬에 참여하며, 덕이 있는 그리스도교 생활을 꾸준히 이어가도록 격려해야 할 의무가 있습니다.
하나님의 영광을 위한 이러한 열정은 우리 각자에게 주어진 의무이며, 우리의 지상적 행복과 영원한 행복은 이 의무를 양심적으로 수행하는 데 달려 있습니다.
마찬가지로, 자신의 신하가 없는 사람들은 삶의 모든 상황에서 그들의 마음이 하나님의 영광을 위한 참된 열심으로 가득 차 있다는 것을 보여줄 의무가 있습니다. 그들은 그리스도교적 사랑에 있어서 오류를 범하는 이웃을 훈계하고 바로잡도록 해야 할 의무가 있으며, 덕과 거룩한 그리스도교 신앙을 조롱하는 사람들에게 그들의 행동을 용납하지 않는다는 것을 보여야 할 의무가 있습니다. 그들은 그런 연설을 진심으로 싫어한다는 것을 말과 행동으로 보여야 할 의무가 있으며, 가능한 한 그들과 어울리는 것을 피할 의무가 있습니다.
마찬가지로, 자신의 신하가 없는 사람들은 삶의 모든 상황에서 그들의 마음이 하나님의 영광을 위한 참된 열심으로 가득 차 있다는 것을 보여줄 의무가 있습니다. 그들은 그리스도교적 사랑에 있어서 오류를 범하는 이웃을 훈계하고 바로잡도록 해야 할 의무가 있으며, 덕과 거룩한 그리스도교 신앙을 조롱하는 사람들에게 그들의 행동을 용납하지 않는다는 것을 보여야 할 의무가 있습니다. 그들은 그런 연설을 진심으로 싫어한다는 것을 말과 행동으로 보여야 할 의무가 있으며, 가능한 한 그들과 어울리는 것을 피할 의무가 있습니다.
더욱이 우리가 합리적이고 정의롭다면, 우리는 의로운 사람과 믿는 사람뿐만 아니라 불신자, 이단자, 죄인을 위해서도 매일 기도할 의무가 있습니다. 전자가 개종하고, 후자가 진리와 덕행의 삶의 길을 꾸준히 걷는 것을 의미합니다. 우리는 모든 사람에게 그리스도인 생활의 좋은 모범을 보여야 할 의무가 있습니다.그러면 주님의 말씀이 성취될 것입니다. “너희 빛이 사람들 앞에 비치어, 그들로 너희 착한 행실을 보고 하늘에 계신 너희 아버지께 영광을 돌리게 하여라.” (마태복음 5:16)
그의 거룩한 뜻에 대한 순종과 헌신으로
우리는 특히 하나님의 거룩한 뜻에 대한 순종과 헌신을 통해 그분께 영광을 돌립니다!
하나님에 대한 존경이 하나님을 우리의 주인으로 인정하고 그분께 복종하는 데 포함된다면, 하나님의 뜻에 대한 순종과 헌신 역시 존경의 범위에 속한다는 것은 매우 분명합니다.
덕을 실천함으로써 우리는 하느님께서 우리에게 요구하시는 것을 행하고, 이를 통해 그분을 우리의 주인이자 아버지로 인정하며, 이를 통해 겸손하고 신뢰하는 마음으로 그분께 복종합니다. 모든 일에서 하나님께 순종하는 것이 우리의 가장 엄격한 의무입니다.
'우리는 누구인가', '신은 누구인가'라는 질문을 던지면 신이 우리의 주인이자 창조주, 아니 오히려 우리 아버지이시고, 우리는 단지 그의 피조물, 하인, 아니 오히려 그의 사랑하는 자녀라는 사실이 분명해집니다. 그러므로 창조물이 창조주에게 복종하고, 종이 주인에게 복종하고, 자녀가 아버지에게 복종하는 것은 매우 자연스러운 일입니다.
그러므로 하나님은 불순종을 미워하시고 엄하게 처벌하십니다. 이것은 선지자 사무엘이 불순종한 사울 왕에게 한 말에서 분명히 드러납니다. "너는 어리석게 행동하였다!" 만일 네가 네 하나님 여호와께서 네게 주신 계명을 지켰더라면, 여호와께서 이스라엘 위에 네 왕국을 영원히 굳건히 하셨을 것이다. "이제 네 나라는 영원히 지속되지 못할 것이다. 여호와께서 자신의 마음에 맞는 사람을 찾아서 그의 백성의 왕자로 세우셨으니, 이는 네가 여호와께서 명령하신 것을 지키지 아니하였기 때문이다" (삼상 13:13-14).
그러므로 하나님은 불순종을 미워하시고 엄하게 처벌하십니다. 이것은 선지자 사무엘이 불순종한 사울 왕에게 한 말에서 분명히 드러납니다. "너는 어리석게 행동하였다!" 만일 네가 네 하나님 여호와께서 네게 주신 계명을 지켰더라면, 여호와께서 이스라엘 위에 네 왕국을 영원히 굳건히 하셨을 것이다. "이제 네 나라는 영원히 지속되지 못할 것이다. 여호와께서 자신의 마음에 맞는 사람을 찾아서 그의 백성의 왕자로 세우셨으니, 이는 네가 여호와께서 명령하신 것을 지키지 아니하였기 때문이다" (삼상 13:13-14).
"여호와께서 번제와 제사를 좋아하시겠느냐? 그 목소리를 듣는 것을 좋아하시겠느냐? 순종은 최고의 희생보다 더 가치 있고, 복종은 숫양의 기름보다 낫다는 것을 알라. 불순종은 마법의 죄와 같고, 자기 의지는 우상 숭배의 범죄와 같습니다. "당신은 여호와의 말씀을 버렸으므로 여호와께서 당신을 버려 왕이 되지 못하게 하셨나이다" (삼상 15:22-23)
그러므로 우리는 하나님의 뜻에 순종할 때 하나님께서 우리를 가장 기뻐하신다고 확신할 수 있습니다. 그리고 이것이 사실이라는 것은 하나님의 말씀에 따라 아들 이삭을 제물로 바치려고 했던 족장 아브라함에게서 볼 수 있습니다.이것은 성경의 다음과 같은 말씀에서도 알 수 있습니다. "네가 이같이 행하여 네 외아들을 내게 아끼지 아니하였으니, 내가 반드시 너를 축복하고 네 후손을 하늘의 별과 바닷가의 모래와 같이 많아지게 하리라!" 그리고 너의 후손은 적의 문을 정복할 것이다. "네가 내 명령을 지켰으므로 땅의 모든 민족이 네 자손을 통하여 복을 받을 것이다." (창세기 22:16-18)
하나님의 이러한 말씀에서 볼 수 있듯이, 순종은 우리가 하나님께 드릴 수 있는 가장 완벽한 희생입니다. 만약 우리가 하나님을 사랑하는 마음에서 현세적 재물을 포기하고, 삶의 모든 안락함을 뒤로 한 채 여러 가지 고통을 겪게 된다면, 우리는 하나님께 속한 것만을 희생하는 셈입니다. 하지만 우리가 하나님께 완전히 순종하고자 한다면, 우리는 그분께 우리 자신을 희생해야 합니다. 그렇게 할 때 우리는 자유를 포기하고 우리 자신을 완전히 하나님의 처분에 맡기게 됩니다. 이렇게 함으로써 우리는 우리의 자유 의지를 하나님의 손에 맡기고 하나님께서 그분의 뜻에 따라 우리에게 원하시는 것은 무엇이든지 행하실 수 있게 됩니다. 분명, 그것은 우리가 하나님께 드릴 수 있는 절대적으로 소중하고 신성한 선물, 즉 우리가 그분께 가장 큰 영광을 돌리는 희생입니다. 그러므로 우리는 언제나 순종이라는 위대한 미덕을 실천해야 하며, 언제나 우리 자신의 뜻을 극복하고 오직 하나님이 원하시는 일만 행해야 할 의무가 있습니다.
우리의 뜻이 하나님의 뜻이라는 것을 알고 확신할 때, 어떠한 장애물이나 어려움도 우리가 그 뜻을 실행하는 것을 막지 못하게 해서는 안 됩니다. 삶의 모든 상황에서 하나님의 뜻이 우리의 행동의 지침이 되어야 합니다. 그러므로 우리는 영적, 세속적 지도자에게 양심적으로 복종할 의무가 있습니다. 그들에게 순종하는 것은 하나님께 순종하는 것입니다. 왜냐하면 그들은 지상에서 하나님의 대표자들이기 때문입니다.
하나님께서 우리에게 어려움과 고통을 주시더라도 우리는 기꺼이 순종할 의무가 있으며, 행복한 날이든 어려운 날이든 하나님께서는 항상 우리에게 가장 좋은 것을 원하시고 주신다는 것을 명심해야 합니다.
하나님께서 우리에게 어려움과 고통을 주시더라도 우리는 기꺼이 순종할 의무가 있으며, 행복한 날이든 어려운 날이든 하나님께서는 항상 우리에게 가장 좋은 것을 원하시고 주신다는 것을 명심해야 합니다.
궁극적으로, 하나님에 대한 내적 존경은 하나님을 믿고, 그의 약속을 바라며, 무엇보다도 그를 사랑해야 할 의무로 구성된다는 결론을 내릴 수 있습니다.
또한 우리는 하나님을 경외하고 예배해야 할 의무가 있으며, 수많은 축복에 감사해야 하고, 그의 영광을 위해 일하고, 기꺼이 순종해야 하며, 기쁨과 슬픔 속에서 그의 거룩한 뜻에 복종해야 할 의무가 있습니다.
또한 우리는 하나님을 경외하고 예배해야 할 의무가 있으며, 수많은 축복에 감사해야 하고, 그의 영광을 위해 일하고, 기꺼이 순종해야 하며, 기쁨과 슬픔 속에서 그의 거룩한 뜻에 복종해야 할 의무가 있습니다.
우리가 이 모든 것을 부지런히 행한다면, 우리는 올바르고 내적인 방식으로 하나님을 공경하는 것입니다. 그리고 만약 우리가 위에 나열한 것들을 모두 행하지 않는다면, 우리는 크고 중대한 죄를 짓는 것이며, 죽을 때까지 이런 죄를 계속 지으면 영원한 멸망에 직면하게 됩니다.
우리는 어떻게 외적으로 하나님을 공경합니까?
우리가 내면의 감정을 외적인 행동으로 드러낼 때 우리는 하나님을 외적으로 존경하게 됩니다!
특히 일요일이나 공휴일에 다른 신자들과 함께 거룩한 예배에 참석하기 위해 교회에 갈 때, 그 예배 중에 큰 소리로 기도할 때, 기도하는 동안 손을 모으고 무릎을 꿇을 때, 성십자가 표를 그을 때, 예수님이나 성인의 성상 앞에서 특정한 예배를 드릴 때, 그리고 거룩한 순례나 순례 여행을 갈 때 우리는 우리 자신을 이러한 모습으로 드러냅니다.
간단히 말해서, 우리는 외적인 행동을 통해 하나님께 대한 내적, 정서적 경외감을 표현할 때마다 외적으로 하나님께 영광을 돌립니다.
간단히 말해서, 우리는 외적인 행동을 통해 하나님께 대한 내적, 정서적 경외감을 표현할 때마다 외적으로 하나님께 영광을 돌립니다.
이것은 의무를 올바르게 수행하는 모든 그리스도인 신자에게 분명해야 하므로, 이제는 하나님에 대한 외적인 경의가 명령인지, 그리고 그 경의에 있어서 어떻게 잘못을 범할 수 있는지를 명확히 하는 것만이 필요합니다.
주님의 이 분명한 말씀을 인용하면서: "그러나 참 숭배자들이 아버지께 영과 진리로 예배할 때가 오고 지금이니라 아버지께서는 이렇게 자기에게 예배하는 자들을 찾으시느니라" (요한복음 4:23), 이단자들은 주 예수 그리스도께서 하나님에 대한 모든 외적인 경외심을 거부하시고 오직 내적인 경외심만을 찾으신다고 결론짓습니다.
그들은 그 구절을 오해하거나 오해했는데, 왜냐하면 주 예수 그리스도께서 하나님에 대한 외적인 경외심을 어떤 식으로든 거부하신 것이 아니라, 그 말씀에서 신약성경에서 하나님에 대한 경외심은 특히 내적인 것이고, 구약성경에서는 특히 외적인 경외심이었고, 내적인 경외심이 없는 외적인 경외심은 아무런 가치가 없다는 것을 말하고자 하셨기 때문입니다.
그러므로 인간의 본성은 우리로 하여금 하나님에 대한 내적, 외적 존경심을 갖도록 강요합니다. 우리가 순전히 영적인 존재라면, 천사들이 그러하듯이 우리도 영으로 내적인 방식으로만 하나님을 공경할 수 있을 것입니다. 하지만 우리는 영혼과 육체로 이루어져 있으므로 일부는 영적이고 일부는 육체적인 존재이며, 따라서 우리는 내적인 방식 즉 영혼으로, 그리고 외적인 방식 즉 육체로 하나님을 공경할 의무가 있습니다.
만약 우리가 합리적이고 정의롭다면, 우리는 영혼이 신의 작품이며, 그 모든 힘을 주인이자 창조주께 바치고 그분을 섬길 의무가 있다는 것을 알 것입니다. 우리는 또한 신체가 신의 작품이며, 신체 역시 창조주에게 복종, 감사, 숭배를 표현할 의무가 있다는 것을 알고 있습니다.
더욱이 몸은 모든 행동에서 영혼을 위한 도구 역할을 해야 합니다!
농부에게 쟁기가, 화가에게 붓이, 작가에게 펜이 의미하는 바는 영혼에게는 육체와 같으며, 영혼은 모든 일에 육체를 사용합니다. 영혼의 첫 번째이자 가장 중요한 임무는 신을 공경하는 것이므로, 신체는 오로지 그 임무를 위해서만 영혼에게 봉사한다고 결론 내리기 쉽습니다.
농부에게 쟁기가, 화가에게 붓이, 작가에게 펜이 의미하는 바는 영혼에게는 육체와 같으며, 영혼은 모든 일에 육체를 사용합니다. 영혼의 첫 번째이자 가장 중요한 임무는 신을 공경하는 것이므로, 신체는 오로지 그 임무를 위해서만 영혼에게 봉사한다고 결론 내리기 쉽습니다.
우리는 주님의 성육신을 통해서, 특히 거룩한 성사들을 통해서 우리의 영혼뿐만 아니라 육체도 거룩하게 된다는 것을 알아야 합니다. 하나님께서 거룩하지 않은 모든 피조물로부터 영광과 존귀를 받으셔야 한다면, 우리의 몸도 반드시 그래야 한다는 것은 우리에게 매우 분명한 사실입니다. 특히 부활 이후에 우리의 몸은 영혼과 함께 영광을 받고 천국의 영원한 기쁨을 누릴 것이기 때문입니다.
하늘은 선행에 대해 보상을 주는데, 누구도 그것을 받을 자격이 없이는 하늘에 들어갈 수 없기 때문에, 몸도 영혼의 선행에 힘써야 하며, 특히 신에 대한 경의를 표해야 하늘의 행복을 얻을 자격이 있다는 것은 매우 분명한 사실이다.
하나님에 대한 외적인 경외심을 가져야 하는 두 번째 이유는 우리의 본성이 내면의 경건함을 외적인 방식으로 나타내기 때문입니다!
우리 각자는 본성적으로 우리의 생각, 느낌, 원하는 것을 우리의 행동을 통해 외부적으로 표현합니다. 영혼을 움직이는 감정이 강할수록 이러한 현상은 더욱 커진다. 따라서 큰 기쁨이나 큰 슬픔의 감정을 자세, 말, 행동으로 드러내지 않고 그대로 담아두는 것은 거의 불가능합니다. 특히 경건함에 대한 감정도 마찬가지입니다.
만일 우리가 하나님의 무한한 위엄과 넘치는 사랑과 자비, 그리고 그분의 다른 완벽함을 생생하게 확신한다면, 우리는 우리의 감정을 억제할 수 없습니다. 이런 감정은 우리로 하여금 무릎을 꿇게 하고, 손을 모으게 하고, 눈을 하늘로 치켜올리게 하며, 다시 말해 참된 그리스도교 신자에게 합당한 경건함을 보이게 합니다. 끓는 그릇이 그 내용물을 담을 수 없어 쏟아내는 것처럼, 마음도 경건함의 불을 그 자체 안에 담을 수 없어 외부로 아주 분명하게 드러냅니다.
그래서 교회에서 어떤 사람이 극장에 있는 것처럼 주위를 둘러보고, 때로는 오른쪽으로, 때로는 왼쪽으로 돌며, 불안해하고 품위와 겸손함을 갖추지 않은 모습을 볼 때, 이 사람은 마음에 참된 경건함이 없고 내면과 외면으로 하나님을 거의 또는 전혀 예배하지 않는다고 말할 수 있습니다.
이 판단은 전적으로 옳습니다. 왜냐하면 이 사람이 마음속에 경건함을 가지고 있다면 그것은 분명히 그의 행동으로 겉으로 드러날 것이기 때문입니다. 종교적 감정이 생생할수록 더욱 외부로 표출됩니다. 그래서 성인들의 전기에서 우리는 그들이 얼마나 경건하게 놀라운 일을 했는지 읽을 수 있습니다.
따라서 세인트라고 읽을 수 있습니다. 바츨라프는 한겨울 보헤미아에서 밤에 맨발로 교회를 방문했으며, 종종 눈 위에 피 묻은 발자국을 남겼습니다. 어떤 이들은 기도하는 데 온 시간을 보냈고 마치 굳어버린 듯이 외부 세계와 완전히 단절되었습니다.
따라서 세인트라고 읽을 수 있습니다. 바츨라프는 한겨울 보헤미아에서 밤에 맨발로 교회를 방문했으며, 종종 눈 위에 피 묻은 발자국을 남겼습니다. 어떤 이들은 기도하는 데 온 시간을 보냈고 마치 굳어버린 듯이 외부 세계와 완전히 단절되었습니다.
그러므로 우리 안에는 경건함을 외부적으로 드러내고 하나님에 대한 외부적인 경건함을 소홀히 하지 않도록 강요하는 어떤 자연스러운 힘이 있다는 것은 확실합니다. 우리가 우리의 본성에 반대하고 그에 반하는 일을 할 때에만 이러한 외적인 경건함의 표현을 버릴 수 있습니다.
하나님에 대한 외적인 존경심이 필요한 다음 이유는 이 외적인 존경심이 우리의 내적인 존경심을 뒷받침하기 때문입니다! 우리는 영혼과 육체가 서로에게 영향을 미친다는 것을 알아야 합니다. 즉, 영혼이 육체에 영향을 미치듯이 육체도 영혼에 영향을 미칩니다. 마찬가지로, 우리의 내면적 존경심은 외면에 영향을 미칩니다. 즉, 외면은 내면의 표현이며 내면을 뒷받침합니다. 우리가 하나님에 대한 외적인 경의를 소홀히 한다면 우리는 점차 미온적인 태도와 종교적 무관심에 빠지게 되고, 거룩한 그리스도교 신앙을 잃을 위험에 처하게 됩니다. 그러므로 내적인 경건함과 경건한 삶을 성장시키고 유지하기 위해서는 외적으로도 하나님을 공경하는 것이 필요합니다.
더욱이 우리는 다른 사람들에게 좋은 모범을 보이고 그들에게 신에 대한 사랑과 경외심을 심어주기 위해 외부적인 존중심을 실천할 의무가 있습니다!
즉, 우리 각자는 가능한 모든 방법으로 이웃을 격려하여 하나님께 대한 거룩한 봉사를 할 의무가 있습니다. 물론, 한 가지 방법은 외적으로 하나님을 공경하는 것입니다. 다른 사람들이 우리가 자주 신의 공적 예배에 참석하여 경건하게 기도하고 신에 대한 경의를 표하는 모습을 보면, 그들에게도 좋고 유익한 인상을 남기게 되고, 그들도 그의 모범을 따라 종교적 의무를 부지런히 수행하고 경건한 삶으로 신의 거룩한 이름을 영화롭게 하도록 하게 됩니다. 이것은 특히 지도자와 인간 사회의 더 높은 지위에 있는 사람들에게 해당됩니다. 공무원과 다른 높은 정부 관리들이 공개 예배에 참석하여 헌신적인 기도로 깊이 겸손하게 하나님께 영광을 돌리는 모습을 보면 신민과 하층 계층의 사람들이 격려를 받는 것은 당연한 일입니다. 이런 예들은 백 가지 설교보다 가치가 있기 때문에, 우리가 왜 외적으로 하나님을 공경해야 하는지 보여주는 것이 매우 중요합니다.
세상이 시작된 이래로 모든 시대에 걸쳐 사람들은 겉으로 드러난 방식으로 하나님을 공경해 왔습니다. 카인과 아벨부터 족장들을 거쳐 모세에 이르기까지, 우리는 하나님께서 어떻게 외적인 방식으로 영광을 받으시는지 봅니다. 하나님께서는 모세를 통해 이스라엘 백성에게 외적인 예배에 관한 많은 규정을 주셨습니다. 그래서 그는 안식일과 많은 축제, 사제직을 제정하고, 다양한 희생 제사와 제사 방법을 규정하고, 종교적 집회와 기도를 위한 장소를 지정했습니다.
주 예수 그리스도께서는 하나님에 대한 외적인 경의를 없애지 않으셨습니다. 그는 외부의 존경이 내부에서 나와서 이를 명확하게 표현하길 원합니다. 예수 그리스도께서는 예루살렘 성전을 방문하셨을 때, 엎드려 무릎을 꿇고 기도하셨을 때, 하늘을 올려다보며 기도하셨을 때, 겉으로는 하나님이나 하늘에 계신 아버지께 영광을 돌리셨습니다. 그는 또한 미사와 성례전을 제정하고 사도들에게 모든 곳에서 하느님에 대한 경의를 나타내는 외부적 표징을 도입하도록 지시했습니다. 그러므로 사도행전의 이 분명한 말씀은 초기 그리스도인들이 하나님의 공적 봉사를 위해 모였다는 것을 보여줍니다. "그들은 사도들의 가르침과 교제, 떡을 떼는 일과 기도하는 일에 전념하였다" (사도행전 2:42).
초기 기독교인들은 하나님에 대한 외적인 경의를 표하는 데 너무 관심이 많았기 때문에 박해가 일어났을 때 동굴과 은밀한 장소에 모여서 거룩한 미사, 성사, 그리고 하나님께 드리는 공통된 신성한 예배에 참여하지 못하기보다는 차라리 죽는 것을 택했습니다.
그러므로 그리스도인들이 항상 해왔던 일을 우리도 오늘날 해야 할 의무가 있으며, 따라서 우리는 하나님에 대한 외적인 존경심을 표현하는 것을 방해할 수 있는 모든 것을 신중하게 피할 의무가 있습니다.
이 프레젠테이션의 마지막에서, 우리가 하나님에 대한 외적인 경의를 실천하지 않는다면 우리는 중대한 죄를 짓거나 치명적인 죄를 짓게 되며, 이 죄는 다음과 같이 나타납니다.
우리가 하나님의 신성한 봉사를 소홀히 할 때
우리가 하나님의 거룩한 예배에서 음란하고 부끄러운 행동을 할 때
우리가 하나님의 신성한 봉사를 소홀히 할 때
하나님께 드리는 거룩한 예배에는 일요일과 공휴일에 교회에서 행하는 모든 예배가 포함됩니다!
만약 우리가 일요일과 공휴일에 미사에 참석하지 않는다면, 우리는 하느님께 드리는 신성한 예배를 소홀히 하는 것이며, 따라서 우리는 하느님의 계명과 거룩한 교회의 계명을 어기기 때문에 중대한 죄를 짓는 것입니다. 우리가 하느님께 대한 봉사를 소홀히 할 때 우리는 세 가지 죄를 짓게 됩니다. 하느님께 대한 죄, 이웃에 대한 죄, 우리 자신에게 대한 죄입니다.
하느님께서는 공개적이고 신성한 헌신을 정하셨고, 우리가 그분께 존경과 숭배를 희생하여 참여하기를 원하십니다. 따라서 우리가 타당한 이유 없이 하나님의 공적 예배에 참석하지 않는다면 우리는 하나님께 크고 중대한 죄를 짓는 것입니다. 왜냐하면 우리는 하나님께 합당한 영광을 앗아가기 때문입니다.
마찬가지로, 우리가 하나님의 신성한 예배에 참여하지 않는다면, 우리는 이웃에게 불쾌감을 주는 것입니다. 왜냐하면 우리가 이웃에게 보여야 할 합당한 모범을 보이지 않기 때문입니다.
궁극적으로, 우리가 하나님께 드리는 신성한 예배를 소홀히 한다면, 우리는 그리스도교 교훈에 주의를 기울이지 않는 것이며, 경건하고 거룩한 삶을 살아가는 데 필요한 자질을 갖추지 못하기 때문에 우리 자신에게 죄를 짓는 것입니다.
이러한 이유로 우리는 하느님께 드리는 신성한 예배를 소홀히 해서는 안 되며, 하느님과 이웃, 그리고 우리 자신에 대한 의무를 다하지 못하는 일이 없도록 일요일과 공휴일에 부지런히 예배에 참석해야 할 의무가 있습니다.
우리가 하나님의 거룩한 예배에서 음란하고 부끄러운 행동을 할 때
하나님께서는 당신 집의 명예를 소중히 여기시며, 깊은 경의로 그분을 경배해야 할 자리에서 부적절한 행동으로 그분을 모욕하고 다른 사람의 경건함을 방해하는 자에게는 엄중한 형벌을 내리겠다고 위협하십니다.
거룩한 복음에서 주 예수 그리스도께서는 예루살렘 성전을 채찍으로 더럽힌 상인들과 다른 사람들을 몰아내시고 분노하셔서 이렇게 말씀하셨다는 것을 알 수 있습니다. "내 집은 기도하는 집이 되리라 기록되었거늘 너희는 그것을 강도의 소굴로 만들었도다" (루카 19:46).
만약 우리가 신에게 드리는 거룩한 예배 중에 부적절하게 행동한다면, 다시 말해, 떠들고 웃고 다양한 농담을 한다면, 주변을 둘러보며 추한 생각을 한다면, 교회에 부적절한 옷차림으로 와서 남들에게 보이고 싶어 한다면, 또는 그저 습관적으로 교회에 와서 인간적인 욕구를 충족시키고 신에 대한 거룩한 예배와 그분의 영광을 잊는다면, 우리는 크고 중대한 죄를 짓는 것이며 신의 진노가 이 세상에서는 아니더라도 다음 세상에서는 확실히 임할 것입니다. 그곳에서 우리는 영원한 저주를 받게 될 것입니다.
그러므로 우리는 하나님의 신성한 예배에 있어서 어떠한 경박함과 음란함도 절대 금물입니다. 특히 가톨릭 부모는 자녀가 품위 있고 순결한 방식으로 행동하도록 보장할 의무가 있습니다. 즉, 어릴 때부터 하느님의 신성한 예배에 올바르고 품위 있게 임하는 법을 배우도록 해야 합니다.
결국, 하나님의 첫 번째 계명이 무엇인지 명확히 아는 우리는 내적으로나 외적으로 하나님을 공경할 의무가 있다는 결론을 내릴 수 있습니다. 내적으로는, 그의 위대하고 거룩한 위엄 앞에 우리 자신을 낮추고, 하나님이 모든 것이시며 우리는 아무것도 아니라는 사실을 인정함으로써 가능합니다. 우리는 우리 자신을 그분께 제물로 온전히 바침으로써, 그분께 찬양과 영광을 돌리고, 존귀하게 여기고, 영광을 돌릴 의무가 있으며, 하나님께서 우리 마음의 왕이 되시고 그 마음을 다스리셔야 합니다. 이러한 내적 존중은 외적 존중의 금과도 같습니다. 왜냐하면 핵이 없는 호두는 쓸모가 없는 것처럼, 외적 존중도 내적, 혹은 내적 거룩함의 표현이 아니라면 진정한 가치를 가질 수 없기 때문입니다.
그러므로 우리는 외적인 방식으로 하나님을 공경할 의무가 있습니다. 외적인 존경은 필요하고 모든 사람에게 엄격하고 신성한 의무이기 때문입니다. 그러므로 우리는 하나님의 신성한 예배에 부지런하고 품위 있게 참석할 의무가 있으며, 우리 가족과 부하 직원, 그리고 다른 신자들에게 좋은 모범이 될 의무가 있습니다. 또한 우리는 하루도 아침 저녁 기도하지 않고 보내는 날이 없도록 가정 예배를 부지런히 행할 의무가 있습니다. 우리는 삶의 모든 상황에서 침착한 정신과 경건한 마음으로 기도할 의무가 있습니다. 만약 다양한 방해 요소가 의도치 않게 생긴다면, 우리는 그것을 알아차리는 즉시 그것을 제거하고 우리의 생각을 다시 하느님께 돌려야 할 의무가 있습니다. 우리는 기도를 통해 경건한 그리스도인의 삶을 유지하고, 모든 죄를 피하고 멸시하며, 항상 하나님께서 우리에게 명령하신 것을 행할 의무가 있습니다.
이런 식으로 행동함으로써 우리는 하나님에 대한 참된 그리스도인적 경의를 실천하게 되며, 그로 인해 우리는 이 땅에서는 은혜와 축복을 누리게 되고, 천국에서는 영원한 구원과 행복을 누리게 될 것입니다.
우리가 하나님께 드려야 할 존경심을 어기는 죄
우리는 하나님께 대한 존경심 때문에 죄를 짓습니다.
사신 숭배
미신
마법으로
신성모독
영적 고리대금 또는 성직 매매
사신 숭배
우상 숭배는 우리가 창조물에게 오직 하나님께만 합당한 존경을 표할 때 발생합니다!
우리는 하나님을 가장 높고 완벽한 존재로, 하늘과 땅의 주님으로, 모든 선의 근원으로 인정하고, 그분께 존경과 경의를 표해야 할 의무가 있습니다.
우리가 어떤 생물에게 존경심을 보일 때, 다시 말해 그 생물을 우리의 주인이자 신으로 인정하고 존경할 때, 우리는 우상숭배를 하는 것입니다.
우리가 어떤 생물에게 존경심을 보일 때, 다시 말해 그 생물을 우리의 주인이자 신으로 인정하고 존경할 때, 우리는 우상숭배를 하는 것입니다.
이것은 바로 이교도들이 행한 일이었습니다. 그들은 별, 불, 물, 그리고 많은 동물을 신으로 여기고 그들에게 기도했습니다. 그들은 또한 살아 있는 동안이나 죽은 후에 개인을 신으로 모시고, 그들을 위해 사원을 짓고, 동상을 세우고, 희생 제사를 드렸습니다. 그들은 또한 나무, 돌, 금속으로 자신들을 위한 조각상을 만들고 그것을 신으로 여기고 숭배했습니다.
우상 숭배는 정당한 무지에서 비롯된 것이 아니라면 우리가 지을 수 있는 가장 큰 죄 가운데 하나입니다. 왜냐하면 우리가 하나님께 드려야 할 영광이 피조물에게 전가되어 드러나기 때문입니다. 그러므로 하나님께서는 이스라엘 백성에게 우상 숭배를 매우 엄격하게 금하셨고, 그들이 우상 숭배로 죄를 지을 때마다 그들을 엄하게 처벌하셨습니다.
더욱이 우상 숭배가 정당한 무지와 악의에서 어떻게 발생할 수 있는지 아는 것이 필요합니다!
만일 어떤 사람이 정당한 무지로 인해 참 하나님을 알지 못하고 피조물에게 하나님의 영광을 나타낸다면, 그런 우상 숭배는 그 자체로는 죄가 아니다. 왜냐하면 무지로 인해 죄를 지을 수 없기 때문이다. 그러므로 이단자로서 참 하나님을 알 기회가 없는 이교도는 멸망하지 않을 것이 분명합니다. 그러나 만일 그가 자신의 양심에 반하여 행동하고 덕의 법칙을 심각하게 어긴다면, 그 이유로 그는 영원히 멸망할 것입니다. 그러나 어떤 사람이 참 하나님을 알 수 있는 기회가 있으면서도 그 기회를 소홀히 하거나, 참 하나님의 사자들을 완강히 반대한다면, 그는 악의로 인해 이단자가 되어 영원히 멸망하게 될 것입니다.
우리가 겉으로는 피조물에 대한 신성한 존경심을 나타내지만 속으로는 그 존경심을 비난하고 참 하나님을 예배한다면 우리도 이단자이자 우상 숭배자가 됩니다. 이런 우상 숭배는 아시리아와 바빌로니아에 포로로 잡혀간 많은 이스라엘 사람들에 의해 저질러졌는데, 그 이유는 이교도들을 기쁘게 하기 위해 공개적으로는 우상을 숭배했지만, 비밀리에 우상을 멸시하고 참 하나님을 경배했기 때문입니다. 그러므로 이러한 우상 숭배는 중대한 죄이다. 왜냐하면 사람들 앞에서 그것은 하나님께 합당한 영광을 빼앗는 것이고, 동시에 이웃에게 큰 불쾌감을 주기 때문이다.
우상 숭배는 또한 우리 마음을 하나님으로부터 돌려 피조물과 우리의 열정에 맡길 때를 말합니다. 그래서 세인트. 어거스틴은 이렇게 말합니다. "하나님보다 자신의 성향에 더 귀를 기울이는 사람은 불의를 저지르는 것입니다. 사람이 원하고 경배하는 것이 그의 신이기 때문입니다."
그런 우상 숭배자나 이단자들은 하나님보다 세상의 명예와 영광을 더 중시하는 오만한 사람들이고, 의무와 양심과 정의와 자비를 탐욕에 희생하는 인색한 사람들이다.그래서 사도 바울은 그들을 우상 숭배자와 탐식가라고 부르며 그들의 배를 신으로 여긴다. “너희가 아는 바와 같이 음행하는 자나 더러운 자나 탐하는 자 곧 우상 숭배자는 다 그리스도 나라 곧 하나님의 나라에서 기업을 얻지 못하느니라” (엡 5:5).
''그들의 끝은 멸망이다. 그들의 신은 배이다. 그들의 자존심은 수치심에 있습니다. "그들은 세상적인 것들만을 생각합니다" (빌립보서 3:19).
더욱이 이단자나 우상 숭배자는 또한 신민이 모든 것을 하도록 내버려 두는 통치자입니다. 왜냐하면 그들은 신민을 꾸짖거나 처벌하기는커녕, 죄악적인 욕망에 빠지도록 내버려 두기 때문입니다.
일반적으로 이단자란 하나님의 거룩한 뜻을 행하지 않는 사람이나 하나님과 이웃에게 크고 중대한 죄를 지은 사람을 말합니다. 그러므로 우리는 우리의 마음을 정직하게 들여다볼 의무가 있으며, 우리 마음 속에 우리가 섬기는 우상이 있다면, 우리는 그것을 억누르고, 그렇게 함으로써 우리의 모든 사랑을 하나님과 이웃에게 바칠 의무가 있습니다.
미신
미신은 또한 우리가 신에 대해 가져야 할 존경심에 반하는 죄입니다!
이 죄는 다음과 같은 경우 저질러집니다.
이 죄는 다음과 같은 경우 저질러집니다.
우리가 거룩한 교회의 가르침과 관습에 반하는 방식으로 하나님이나 성인을 존경할 때
우리가 어떤 것에 그 자체의 본성상, 교회의 기도나 신의 거룩한 칙령으로는 가질 수 없는 힘을 부여할 때...
우리가 사탄에게 말로든 침묵으로든 우리에게 숨겨진 것이 무엇인지 말해 달라고 요청할 때
우리가 거룩한 교회의 가르침과 관습에 반하는 방식으로 하나님이나 성인을 존경할 때
우리는 하느님과 성인을 존중할 때, 이 존중이 거룩한 교회의 가르침과 관습에 어긋나는 어떤 것도 포함하지 않도록 항상 주의해야 할 의무가 있습니다!
거룩한 교회는 하느님의 계시된 진리를 전달하는 기관이므로, 오직 교회만이 우리에게 하느님을 올바른 방법으로 공경하는 방법을 매우 명확하게 알려줄 수 있습니다. 따라서 그것은 하나님께 대한 거룩한 예배와 우리의 구원에 필요한 모든 것을 규정했습니다. 우리의 헌신이 거룩한 교회의 가르침과 조화를 이루고 그 가르침에 모순되는 내용을 담고 있지 않다면, 그 헌신은 선하고 타당하며, 그것을 통해 우리는 합당한 방식으로 하느님과 성인을 공경합니다. 그러나 우리의 신앙이 어떤 식으로든 성교회의 가르침과 관습에서 벗어난다면, 그 자체로 완전히 미신적이고 죄악적인 것입니다.
우리가 어떤 것에 그 자체의 본성상, 교회의 기도나 신의 거룩한 칙령으로는 가질 수 없는 힘을 부여할 때...
우리는 어떤 것도 그 자체의 본질이나, 거룩한 교회의 기도나, 하나님의 거룩한 법령에 의해 가질 수 없는 힘을 주어서는 안 됩니다.
이러한 미신은 우리가 어떤 확실하고 바람직한 것을 성취하기 위해 비합리적이고 가치 없는 수단을 사용할 때 발생합니다. 우리가 어떤 특정하고 바람직한 것을 성취하기 위해 하나님께 비합리적이고 합당하지 못한 수단을 구하거나 기대할 수는 없다는 것은 매우 분명한 사실입니다. 이런 합당치 않고 터무니없는 수단은 오직 사탄에게서만 구하고 기대할 수 있으므로, 이런 미신은 중대한 죄입니다.
우리가 사탄에게 말로든 침묵으로든 우리에게 숨겨진 것이 무엇인지 말해 달라고 요청할 때
이 미신은 점술이라고 불리며, 별을 해석하고, 새와 동물을 해석하고, 꿈을 해석하고, 주사위를 던지고, 카드 판독하고, 테이블을 옮기는 것 등이 포함됩니다. 이런 종류의 미신도 완전히 죄악입니다. 왜냐하면 사탄의 도움을 받아 우리가 감춰진 것, 즉 접근할 수 없는 것을 알아내고자 하기 때문입니다.
마법으로
마법은 또한 우리가 신에 대해 가져야 할 존경심에 반하는 죄입니다! 우리는 사탄에게 말로든 마음으로든 도움을 요청해 기적을 행하도록 할 때 이 죄를 짓습니다.
사탄의 도움으로 기적을 행하는 마술사들이 있었다는 것은 구약성서의 이러한 말씀에서 분명하게 알 수 있습니다. "파라오는 지혜로운 사람들과 마법사들을 불렀습니다. 그리고 이집트의 마술사들도 그들의 주술로 그와 같이 행하였습니다. 곧 그들이 각자 자기의 지팡이를 던지니 그것이 뱀이 되었습니다 ."(출애굽기 7:11-12)
"그러므로 사울은 그의 종들에게 이르되, '나에게 귀신을 불러들이는 여자를 찾아라. 내가 그녀에게 가서 물어보겠다.'" 그의 종들이 그에게 대답하였다. “보소서, 엔도르에 신접한 여자가 있소이다.” (삼상 28:7)
마찬가지로, 사탄의 도움을 받아 기적을 행하는 마법사들이 있을 것임은 하나님의 이러한 말씀에서 분명하게 드러납니다. "그때에 누가 너희에게 '들어라!' 하고 말한다면, "보라, 메시아가 여기나 저기에 있다'고 하더라도 믿지 말라. 거짓 메시아와 거짓 선지자들이 일어나서 큰 표적과 기사를 행하여 할 수만 있다면 택함받은 자들도 속일 것이기 때문이다." (마태복음 24:23-24)
"불법한 자의 임함은 사탄의 역사에 따라 온갖 권능과 거짓 표적과 기사와 멸망하는 자들에게 임할 온갖 불의한 속임이니라 이는 그들이 진리에 대한 사랑을 받지 아니하여 구원을 얻지 못함이니라" (데살로니가후서 2:9-10)
신성모독
마찬가지로, 신성모독은 우리가 하나님께 드려야 할 존경심을 훼손하는 죄입니다! 우리가 신성하고 하나님께 바쳐진 것을 모욕하고 모독할 때 우리는 신성모독을 저지르는 것입니다. 이러한 모독은 세 가지 방식으로 발생할 수 있는데, 신, 성지 또는 성물에 헌신한 사람을 모독하거나 모욕하느냐에 따라 달라집니다.
영적 고리대금 또는 성직 매매
영적인 고리대금업도 우리가 하나님께만 드려야 할 존경심에 반하는 죄입니다!
영적 고리대금이나 성직 매매는 우리가 돈이나 어떤 금전적 가치를 위해 영적인 것을 사거나 팔고자 할 때 발생합니다. 이 이름은 사도들로부터 안수를 통해 성령을 부여하는 은사를 사고 싶어했던 마법사 시몬의 이름을 따서 지어졌습니다.
영적인 것들이란 영혼의 구원과 관련된 초자연적인 것들을 의미하는 것으로 이해됩니다. 예를 들어, 성령의 은사, 은혜, 기도, 성례전, 축복, 성인의 유물, 죄 사함과 같은 영적 권위의 행사, 용서의 분배 등이 있습니다. 우리가 그러한 영적인 것들을 돈이나 어떤 금전적 가치를 위해 사고 판다면, 우리는 영적 고리대금업을 저지르는 셈입니다.
성직 매매나 영적 고리대금은 중대한 죄입니다. 사도 베드로의 말씀에서도 알 수 있습니다. "네 돈과 함께 망할찌어다. 하나님의 선물을 돈으로 살 수 있다고 생각하였으니라!" (사도행전 8:20)
위에 언급한 모든 죄는 우리가 하나님께 드려야 할 존경심을 어기는 죄입니다. 이 모든 죄를, 만약 우리가 합리적이고 의롭다면, 우리는 온 마음을 다해, 그리고 필요한 주의와 힘을 다해 정죄해야 하며, 그렇게 함으로써 우리 자신을 영원한 멸망으로부터 구할 수 있습니다. 아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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